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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y 31. 2024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다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다


배은주


 "엄마, 오늘 올 거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가 말한다.

 "당연하지. 시간 맞춰서 갈게."

 활짝 웃으며 집을 나서는 아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버스 타고 등교해야 하는 중학생이 되고부터 월요일마다 하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같이 간식도 먹고 저녁 찬거리도 살 겸 시장도 들른다. 중학생이 되었지만 아직 사춘기는 오지 않은 것인지 엄마에게 살가운 아이다. 그런 마음이 고맙고 행복해서 나도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월요일은 어디를 가도 한가하고 여유롭다. 얼른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예약 도서를 찾으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읽고 싶었던 신간이 입고되었길래 얼른 예약을 했었는데 오늘 알림 문자가 떴다. 신간은 예약하지 않으면 한두 달 안에는 읽기 힘들다. 특히 유명한 작가의 신작은 예약조차도 힘들다. 예전에 비해 책을 찾는 독자들이 많은 것일까?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길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들'에 속한다는 소속감도 괜찮다. 나와 같은 책을 빌리는 '누구'에 대한 연대가 생기는 것이다. 책을 찾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날씨가 좋아서 시야가 선명하다. 책을 펼쳐놓고 바다의 일렁거림을 보며 책도 읽고 멍 때리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포근포근 해진다.

 포근한 마음을 가지고 학교 앞에서 아이를 만났다. 오늘은 많이 움직였다고, 그래서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래 알았어. 기다리는 동안 검색해 봤더니 이 근처에 오래된 분식집이 있더라. 튀김 떡볶이가 유명하데. 거기 가보자."

 우리는 'ooo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할머니께서 하시는 골목 입구의 작은 가게였다. 벽에는 'SBS 빅 픽처 패밀리 방영 맛집', '6시 내 고향 출연', '생방송 오늘 저녁 방영'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이 집의 시그니처인 떡볶이와 튀김 2인분을 주문했다. 할머니의 손맛이 듬뿍 들어있는 떡볶이가 접시에 담긴다. 거기에 닭튀김, 만두튀김, 김말이 튀김을 얻어주시더니 '청양고추 뿌려줄까'라고 물어보신다. 청양고추라니 특이하네! 청양고추가 뿌려진 떡볶이 맛을 느껴 보고 싶었지만 아이와 먹을 거라 빼달라고 했다. 아쉬웠지만 어묵 국물을 호로록 마셔가며 먹는 떡볶이는 맛있었다. 예스러운 분위기에 방송을 탄 덕분인지 여행 온 손님들이 간간이 들려 음식을 주문하고 사진을 찍는다.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많아지는 추세이니 이러한 로컬 맛집도 SNS를 타고 '그 지역을 여행하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가게를 노포라고 부른다. 오래된 가게 거나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가게를 뜻한다. 할머니도 40년 넘게 떡볶이 가게를 하셨으니 노포가 확실하다. 사실 노포라는 단어는 일본어를 한자 그대로 읽은 말이다. 단어가 주는 정겨움이 있지만 유래를 알고 보니 한국의 정서에 맞는 단어는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 하나의 아쉬움이라면 오래된 가게들은 많지만 나의 노포 맛집은 통영에 없다는 점이다. 통영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학교 다니면서 먹었던 분식집이 있을 리 없다.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곳이나, 자주 먹었던 음식에 대한 추억이 없다. 그러다 보니 통영 토박이들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음식점에서도 특별한 무엇인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맛있네'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노포는 특별하다. 노포의 맛은 음식 맛에 추억이 더해진 길들여진 맛이다. 비율로 보자면 50 대 50 정도 되지 않을까. 길들여진 맛을 느끼지 못했으니 통영에서 먹어본 노포 맛집이 나에게는 추억을 불러오지 못했고 '그래 이 맛이지'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이 맛이 무슨 맛일까 상상해야만 했다. 노포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아이를 보니 문득 아이는 통영에서 태어났으니 나중에는 통영에서 먹었던 음식이 추억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좋아하는 분식집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신전 떡볶이'라고 말한다. 이럴 수가!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뜬금없는 세대 차이를 느낀다.

 통영에는 없지만 태어난 부산에는 나의 노포 맛집이 있다.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앞에서 '풀빵'이라는 것을 팔았던 할머니 구멍가게가 그랬고, 범일동 중앙시장 골목에 물떡을 팔던 떡볶이 가게가 그랬다. 중학교 때는 학교 옆 쫄면 분식이 유명했는데 특이한 것은 그곳에서 기타를 치며 연주를 하는 선배들이나 대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남포동으로 놀러를 자주 갔는데 순두부찌개를 파는 돌고래 식당이 그랬다. 지금이라도 내가 말한 음식들을 다시 먹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소환된 추억에 돌고래 식당을 검색해 보았다. 있다. 아직까지 있다. 나의 추억을 일부러 지켜주려고 애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마운 마음까지 인다.

 노포 맛집은 대기업 체인점이 아니라 손맛 하나로 승부를 걸었던 집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IMF와 코로나 같은 위기 상황이 많은 노포를 사라지게 하였다. 나의 노포가 그립다. 그때 그 시절이 좋았건 안 좋았건 간에 잊고 있었던 추억을 불러온다는 건 다시 마주하기 힘든 경험이다. 조만간 부산에 가야겠다. 잊고 있었던 나의 노포가 더 있는지 찾아보고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그래 이 맛이지'를 외쳐보고 싶다. 그럼 이 맛이 무슨 맛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저녁 찬거리를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히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다'라는 말처럼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이 너무나 평범해서 행복했다. 문득 불협화음 하나 없이, 마음의 갈등이나 집착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들이 인생에 그렇게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날씨마저 끝내주게 좋아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날. 오늘 하루의 일상이 먼 훗날 기억의 편린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날 말이다. 오늘이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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