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 Jul 22. 2024

다음 여행은 내가 쏜다!

언니와 함께 한 제주도 여행은 최고였다.

 언니와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한때 몸이 아팠던 언니는 완쾌되고 나서 삶을 여유 있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명상도 다니고 운동도 하며 열심히 산다. 그런 언니가 나에게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했다. 

 "제주도 여행 가자. 내가 쏠게!"

 통 크게 자기가 쏜다며 비행기며 숙박을 알아보고 예약하라고 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언니 덕분에 11월의 제주도를 볼 수 있겠네. 너무 기대된다."

 나는 얼른 모든 일정을 잡고 캐리어를 챙겼다.

 비가 살포시 내리는 날, 3박 4일의 일정으로 언니와 제주도 비행기에 올랐다. 두고 온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도착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언니와 나는 사는 지역이 다르다 보니 쉽게 만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전화를 자주 하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 가자고 했을 때는 조금 어색한 면도 있었다. 한 편으로는 어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다 쓸쓸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서로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고 좋은 일만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들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보니 그 속에서 상처 나고 멍들었을 마음들이 있었을 테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알면 감당할 수 없어서 외면했던 감정들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는 쉽게 여행을 가지만 형제나 친정 부모와 여행을 간다는 것은 나에게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으니 제주도는 참 신기한 섬이다. 아니 섬이라는 것이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낯선 섬이 주는 생경함은 마음을 무장해제 시켜놓는다. 오십 가까이 살았던 삶의 흔적은 이 섬에 없다. 언니도 마찬가지다. 언니와 내가 서로의 텃세가 없는 외떨어진 공간에서 똑같이 출발선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기대가 되었다.

 첫날 보았던 새별 오름의 노을은 장관이었다. 여러 사람들 틈에 섞여 시간의 구애 없이 느긋하게 지는 노을을 보았다. 배고프다고 조르는 아이들도 이제 차 밀릴 텐데 내려가자는 남편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노을이 너무 예쁘다. 시간 괜찮아? 더 있어도 돼?"

 "그래, 너 있고 싶을 만큼 있어. 나도 이렇게 노을 보는 거 오랜만이다. 좋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노을을 눈에 담았다.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억새 물결과 붉은 태양을 지나가는 구름 떼가 한층 운치를 더해주는 시간이었다. 

 둘째 날은 예정했던 한라산 등반을 했다. 영실코스를 선택했다. 웅장한 영실기암을 보고 윗세 오름을 지나 남벽까지 왕복 6시간을 걸었다. 한라산 백록담 남벽을 눈앞에 두고 둘러본 제주도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구름과 눈높이를 맞추고 저 멀리 섬의 끝자락과 바다가 이어지는 풍광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생에 한 번은 꼭 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운이 길게 남는 명산이었다. 하산을 하고 숙소에 도착해 여정을 풀었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경치에 취해 올랐는지 저녁쯤에는 피로가 쌓여 제주 흑돼지 맛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셋째 날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종달 마을 북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다고 했고, 언니는 올레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성산 일출봉 근처에 언니를 내려주고 북 카페로 향했다. 입구에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아기자기한 마당이 있는 곳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여행자들이 쉬어가며 마음을 정리하는 공간답게 백팩을 짊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띈다. 두 번째 커피를 마실 즈음에 여행자 모습을 한 언니가 도착했다. 걸으며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고 나도 읽은 책을 말해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녁을 먹고 나서 시작된 이야기는 2차로 술을 다 마실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언니에게 투정 부리는 동생의 말투로 누군가에게는 말해보고 싶었던 개인적인 생각들까지도 술술 나오는 그런 시간이었다.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결혼하고 각자의 삶을 살았던 20여 년의 시간은 서로에게 어떤 생각을 남겼을까? 그중에 혹시나 섭섭했던 기억들이 이 여행으로 사라지지는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도 행복했었던 기억만 남는데 언니도 그러한지 궁금하다. 비워져 있던 시간의 간극이 더 길어지지 않게 다시 여행 계획을 세워보고 싶다. 그때도 이번처럼 좋은 추억을 남기겠지. 언니, 또 여행 가자. 그땐 내가 쏜다! 


작가의 이전글 문학기행을 떠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