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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척척 Jun 24. 2023

나는 ADHD?_(1) 병원을 찾다

고군분투 마음 공부 일기 02


몇 년 전, 성인 ADHD에 대해 접했을  때, 의심의 여지없이 "나다!"라고 생각했다.


발견했다는 사실이 너무 재밌어서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별 관심 없었다.

내가 ADHD라는 것이 재밌게 느껴질 만큼 가벼운 수준이어서 나에겐 그렇게 받아들이기 쉬웠을 수 있다.

그 당시, 이 것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상에( 생활 습관, 사회생활, 경제생활)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가장 크게 보이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이는 어릴 때부터 알거나 익숙하게 느껴진 것들이다.


1. 조심스럽지 못하다

    - 발가락을 항상 부딪힌다. 나도 모르는 멍이 잘 들어있다.

    - 먹을 때 음식을 항상 흘린다.

    - 설거지, 청소 등 활동적인 과업을 할 때 조용하게 하지 못한다.

        (ex) 달그락달그락 소리 나면서 설거지한다 - 듣는 사람은 "부수겠다~?" 한 마디 하는 것이 일상)

    - 물건을 잘 망가뜨리고, 떨어뜨린다.


2. 성격이 급하다

- 상대방의 말을 자주 끊거나, 내가 말할 때 가끔 비약해서 말한다(맥락 없이 본론만 말한다)

- 줄 서는 맛집은 가지 않는다.

- 음식을 매우 빠르게 먹는다. 과식한다.

- 인터넷 강의 등은 2배속으로 듣는다. 현장 강의는 거의 집중하지 않는다.


1, 2로 나누었지만 딱히 나눌 수 없을 만큼 연결되는 증상들이 많이 있다. 하나의 목적(과업)이 생기면 당장 실행하겠다는 급한 마음에 앞, 뒤, 옆은 보지 않고 실행해서 다치거나, 빠뜨리거나, 흘리거나, 떨어뜨리는 등의 행동은 개의치 않고 일단 실행한다. 외에도 충동적인 면(하고 싶은 말을 꼭 한다거나, 생각난 것을 갑자기 행동할 때가 있다) 등의 다양한 증상이 더  있을 것이다.


30살이 넘도록 ADHD인 것이 거슬리지 않았던 데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 될 만한 상황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이 내가 밥 먹을 때"마다" 흘린다거나, 빠르게 과식한다는 것을 알았고, 단지 나의 우스운 모습 정도로 여겼다. 어쩌면 허당끼 있는 인간적인 면모 정도로 생각되었다. 어디에서 튀는 행동을 하거나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ADHD인 것을 누군가 발견하고 말해주기도 쉽지 않았을 거다.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은 조금 무디고 게으르다 정도로 나를 느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리 정돈을 꽤 잘하고, 주어진 과업을 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 학업 성취도 항상 좋았고, 대인관계도 좋았다. 지각은 자주 했지만 10분 이상 지각을 하는 일은 드물어서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내가 지각쟁이임을 알기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뭔가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ADHD 성향을 가진 사람이 유행처럼 재미로 자가진단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자각 후 몇 년 뒤 인 지금, 내가 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찾게 된 배경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한다.



병원을 가기로 결심하 성인 ADHD라고 지도에 검색해서 근처 적당한 곳으로 예약하고 바로 방문했다.


첫날 병원에 가서 한 일

- 선생님에게 증상 상담

- HRV 검사(스트레스 검사)

- 여러 가지 기본 자가진단표(질문지)

- ADHD 자가진단표 (질문지)

- 다시 상담


정신의학과는 처음이라, 흥미로우면서도 매우 긴장되었다.


선생님께 내 의심 증상과, 내가 또 아닌 것 같은 모습들(다른 adhd환자들에게 보이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는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이 내 이야기 한 마디마다 코멘트를 하지 않고 그냥 듣고 계셔서 답답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데 듣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끝나자, 선생님께서는 내가 ADHD와 일관된 증상들을 갖고 있지만 다른 능력들로 보완해와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고 하셨고,  ADHD 자가진단표를 작성하라고 하셨다.


질문지에는 간단한 문항 몇 가지가 전부였는데, 체크해 나가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1번(전혀 아니다)에 해당되는 것이 많다고 느꼈다. 내가 해당하는 증상들은 질문지에 얼마 없고, 나랑 거리가 먼 질문지들만 많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질문지 결과를 가지고 다시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선생님께서도 내 결과가 너무 낮다고 하시며, 보통의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내 결과보다 수치가 훨씬 높게 나온다고 했다. 앞에 상담했던 내 증상들은 ADHD 증상들이 맞기에 조금 더 높게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어쨌든 현재는 너무 낮다고 했다.  또 함께 진행한 기본적인 우울증, 대인관계 등 검사지와, 스트레스 검사 모두 통과(?!)했다.

나는 분명 내가 증상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질문지가 내 증상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느껴져서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이제와서 진단을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자가 진단이 불가능할 만큼 자기 객관성이 떨어지나? 싶기도 하고 뒤죽박죽 했다.


선생님께서 자신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경우 조금 낮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그래도 정밀 검사를 진행하겠냐고 하셔서, 검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예약을 다시 잡아서 진행해야 하기에, 아직은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괜히 긴장된다.


다음 주에 검사 후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

더 증상이 심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 ADHD 환자들도 많이 있다. 또 우울증, 조울증, 성격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도 함께 발병하여 꽤 힘든 병이라고 한다. 나는 일상에 지장도 적고, 진단도 안 나올 수 있는 상태인데 오기로 진단을 받고자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오해할까 밝힌다. 나는 장난이나 자랑거리(무용담), 재밋거리 정도로 여긴다거나, "나는 ADHD 긴 한데, 일상에 문제없고 편안해!" 이렇게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모든 병에는 경증과 중증이 있고 경증이어서 더욱 발견하기 어려웠던 나의 문제의 해결을 찾고자 하는 것임을 밝힌다!



코로나19가 오기 전부터 자가진단은 우리에게 일상이었다.


피부에 작은 돌기 하나 생기거나 어지럼증을 느껴 인터넷 세상에서 의학정보를 검색하다 보면 나는 죽을병에 걸려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오진이다.


병원에 갔는데 막상 다를 때, 큰 병을 걱정했다면 안도감을, 작거나 심각하지 않은 병을 기대했다면 "엥? 진짜? 안 믿어!(난 이미 확진함)" 등의 다양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미 내가 내린 진단에 애착이 생긴 걸까..!


가끔 자신이 큰 병에 걸린 것 같다며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웃긴 동료들

자신은 100% 맞다며 병원 가기 전에 자가진단 내리고 가는 친구들과 의사도 아닌데 우린 이미 진단을 내렸다며 뻔뻔한 우리 모습에 깔깔 웃곤 했다.


누구나 작은 증상이 발견되면 그럴 것 같다.

 "병원에 가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먼저 서칭을 시작한다.

검색 채널도, 정보도 방대하다.

- 이렇게 이 병을 검색한 사람이 많다고?

- 이렇게 경험한 사람이 많다고?

조금이라도 아플 땐, 내가 아프지 않을 때 내가 누리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 내 지난 과거를 반성하며(앞선 정보들은 수많은 증상 선배님들이 작성해 주셨다),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잠시 뿐이지만..).  

 

물론 정신질환은 결이 많이 다르다.

우리가 검색하고 자가진단하는 많은 증상들은

원래 겪지 않았는데 느끼는 불편함, 물리적으로 느껴지거나, 눈으로 관찰되는 증상들이 많다.


원래 평생 겪고 있던 증상이나, 조금씩 자연스럽게 자란 병들은 어떻게 발견할까?

정신 질환 검사도 의무 검진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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