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강 Jan 02. 2023

생채기

흉터야 지워지지 말아라

따릉이를 타다가 넘어져서 오른쪽 팔꿈치에 생채기가 났다. 상수에서 나들목 한강공원으로 내려가는 길목 바닥에서 미끄러져 사고가 났다. 자전거로 수 백번도 더 다닌 곳인데 어이가 없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사고가 났나? 늘 친구들과 러닝 인증 사진을 찍는 원형 거울 속 자전거를 타는 나를 확인하려다가 그런 걸지도 모른다. 또 어제 왔던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면 잠결에 자전거를 타서일 수도 있겠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술에 취했기 때문이다. 넘어지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안심하고 잠시 앉아있었다. 천장의 CCTV가 눈에 들어왔다. 이 새벽에 저 CCTV를 보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나는 그에게 최고의 새벽을 선물한 셈이다. 바지를 털고 일어섰다.


다행히 다리는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오른쪽 팔꿈치가 쓰라렸다. 반팔 위에 대충 걸쳐 입은 얇은 나이키 테크 웨어(TECH + PACK이라고 쓰여있다.)는 아스팔트와의 마찰로부터 내 연약한 피부를 지키기에는 너무 얇았다. 얼른 벗어서 팔을 살펴보니 오른팔 하박이 붉게 물들었다. 색이 진한 곳에서는 더 진한 빨간색의 핏망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테크웨어라서 그런지 옷 자체는 해진 곳 없이 멀쩡했다. 나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자전거의 안장이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돌아갔다. 나는 1분 정도 고치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대충 걸터앉아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집까지 10km 남았다.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해 핸들을 틀 때마다 옷이 팔에 닿아 따가웠다. 아무리 10월 중순이라도 새벽의 찬 공기는 매서웠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 나서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상태를 확인했다. 피가 흐를 정도로 나지는 않았다. 주위에 사람은 없고 정신은 몽롱했다. 찬 공기를 시속 20km로 맞고 있는 손은 감각이 무뎌졌지만 비틀어진 안장이 효율적인 페달링을 방해했다. 불 꺼진 성산대교를 보며 환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망원에 살았던 나는 한강 입구 바로 앞에 따릉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장이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비틀어진 따릉이를 버리고 실한 놈으로 골라다가 다시 페달을 밟았다. 6km 남은 지점이었지만 집에 금방 도착했다.


집에 와서 바로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상처에는 찬물이 좋을 것 같아서 수전을 오른쪽 끝까지 돌리고 물을 틀었다. 물이 상처에 닿는 순간에는 소름이 끼쳤지만 차가운 물이 그 감각을 둔감하게 만들었다. 역시 찬물로 씻어내길 잘했다. 몸을 씻고 머리를 적당히 말린 후에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꿈만 같았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술 먹고 다시는 따릉이를 타지 않겠다는 결심과 택시비로 편히 잘 수 있는 시간을 사자라는 생각을 안고 잠에 들었다.


새해가 밝았다. 안장이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돌아간 따릉이는 고쳐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오른팔 하박에 생긴 상처는 진작에 아물었다. 처음에는 멀쩡한 피부에 색만 빨갛더니 점점 찢어진 부분이 드러났고, 곧 빨갰던 부분 전체를 검은색 딱지가 덮어썼다. 검은색 딱지는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가장자리가 뜯어져 나갔다. 그것이 손톱만큼 작아졌을 때 한 번에 떼어 냈다가 다시 한번 피를 봐야 했다. 딱지가 머물던 자리에는 검붉은 색 흉터가 졌다. 절대 유심히 볼 일이 없는 신체의 부분인데 옷을 갈아입거나 반팔을 입었을 때 눈이 절로 간다. 만져보면 보드라운 새 살이 느껴진다. 왠지 애착이 간다. 이 흉터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찬물 샤워의 저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