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공기가 차다. 짧은 양말과 트레이닝 바지 사이 드러난 발목이 한강 바람에 튼다. 그 탓일까. 다 나은 듯 얌전하던 발목이 다시 아프다. 발목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내 달리기 폼이 안 좋아서일까. 아니면 러닝화가 맞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갑자기 무리해서 훈련을 많이 해서 그럴까. 마라톤은 다가오는데 천하태평한 발목이 얄궂다. 발목이 다치고 나서야 상수동 아스팔트와 보도블록들이 참 울퉁불퉁하다는 걸 알게 됐다. 강변북로 진입로 사거리에서 상수나들목까지 내려가는 도로 위를 달렸다. 보도블록은 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42.195km를 달렸던 거지? 평소에는 좀처럼 달려볼 일이 없는 자동차의 세상에서 거침없이 다음 발을 내딛던 그때가 낯설기만 하다.
최근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졸업하고 처음 본다고 생각했는데, 입대 전에 집에도 놀러 오고 자주 봤었더라. 성민이랑 건형이. 성민이는 대학교 2학년, 작년 3월에 전역해서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더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을 하는 임상학과라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건형이는 ROTC를 해서 졸업까지 다 하고 곧 진급하는 대한민국 육군 소위다. 요즘 북한이 자꾸 도발을 하는데 그때마다 1사단에 있는 건형이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3 명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같은 고등학교 동창인 경진이한테 전화가 왔다. 이 둘을 만나러 간다고 경진이한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인사라도 하려고 전화를 했을 것이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더라. 경진이는 그 둘을 '골키퍼 하던 애'랑 '싸움 잘 말리던 애'로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다른 아이들을 기억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을 쓰기가 귀찮다. 정확히 말하면 잘 안 써진다. 글을 쓰려고 앉기가 어렵고, 앉아도 뭐를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나를 드러내려고 글을 써왔는데, 뭔가 드러낼 필요에 대해서 못 느낀다고 할까. 아니면 더 거창하고 비장하고 멋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럴 소재가 없다고나 할까. 아무튼 글을 쓰려고 노션 페이지를 딱 키면 숨이 턱 막힌다. 그래서 주제도 정하지 않고 초안도 쓰지 않고 그냥 아무 글이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