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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Jun 16. 2023

자유와 안전 사이

<독서정담 두 번째 : 스갱아저씨의 염소>

2023.06.14. 햇볕이 내리쏘는 듯.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마음이 급하다. 도서실엔 뭐 그리 잡다한 일이 많은지, 발을 동동.

그녀와 내가 뽑은 논제를 급히 출력해 반을 접어 가방에 욱여넣은 후 혜경궁 베이커리로 향했다.

평일 주차장은 한산하다. 차를 세우는데 저만치 차를 세우는 그녀의 차가 보인다. 거의 동시 도착.

퇴근 후인데도 햇볕이 따갑다. 모자를 챙기고 보니, 차에서 내린 그녀는 모자가 없다.

"샘, 모자 없어요~?"

차에 여분으로 놔두는 모자 하나를 건넸다.

보통저수지를 돈다. 전에 왔을 때 보이지 않았던 연들이 호수 한 켠, 넓게 펼쳐져 있다. 꽃은 아직이다.

오후 6시 전후, 이른 저녁인데도 햇살의 강도는 낮과 별 차이가 없다.  

"와... 이젠 더 뜨거워질 텐데... 나중엔 책 이야기 먼저 하고 밥 먹고 (보통저수지) 돌던가 해야겠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아마 6월 말쯤부터 더 뜨거워질걸요?"

"그럼 당장 다음 모임부터네요. ㅎㅎ"

저녁식사 후 시원한 음료 두 잔을 들고 빵집 테라스에 앉아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이야기 나눌 책은 <스갱아저씨의 염소>.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란다. 출판사 두 곳에서 펴냈다. 하나는 파랑새 출판사(2013년. 이하 파랑새)와 북비 출판사(2015년. 이하 북비)다. 큰 차이는 파랑새에서 나온 책은 내용 도입부에 편지가 실려있다는 점이다. <파리에 계신 피에르 그랭그와르 시인 아저씨께> 쓰는 편지다. 그녀가 갖고 온 북비에서 나온 책을 살펴보았다. 편지가 실려 있지 않고 그림체가 다르다. 파랑새판은 단순하고 어둡고 강렬한 느낌인 반면 북비의 그림은 따스하고 자세하고 밝다. 번역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파랑새 출판사에 나온 그림책과 도입부 편지


북비 출판사에서 펴낸 그림책


도입 부분에 실린 편지 관련, 내가 뽑은 첫 번째 논제가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피에르 그랭그와르 시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가 나옵니다. ‘유명한 신문사 기자 자리를 거절’한 아저씨를 걱정하며, 아저씨가 ‘구멍 뚫린 셔츠’와 ‘닳아빠진 바지’를 입고 사는 건 ‘10년 넘게 시 쓰기에만 매달려온 탓’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이 편지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그녀는 이 편지로 인해 파랑새에서 출판한 작품이 훨씬 좋았다고 한다. 스갱아저씨의 염소가 단순한 우화로 읽히지 않고, 현실의 문제와 맞닿아 있어 내용에 쉽게 빠져들고 흥미진진했다고. 더불어 마지막에 블랑케트의 죽음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고 한다. 나 역시 편지로 인해 이야기 속으로 훅 빠져드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편지가 아쉬웠다. 피에르 아저씨의 삶을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전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시 쓰기'와 '유명한 신문사 기자 자리'. 양자택일의 전제가 내키지 않았다. 하고 싶은 시 쓰기를 하기 위해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할 수도 있고, 기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삶은 다양하다. 선택의 길은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가지 않을 뿐. 이에 대해 그녀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언급했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가 아니었을 거라고.


두 번째 논제는 표현만 다를 뿐 비슷하다. 바로 스갱아저씨에 대한 생각을 묻는 논제다.


나 : 스갱 아저씨는 여섯 마리 염소들을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잃어버렸습니다. ‘염소들이 달아날 때마다 큰 상처를 받’았다며 ‘두 번 다시 염소를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뿐 길들이기 쉬운 어린 염소를 사와 ‘블랑께뜨’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정성스럽게 키웁니다. ‘경치 좋은 곳에 말뚝을 박고, 목에 긴 줄을 매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블랑께뜨는 스갱 아저씨의 집이 지루해져 ‘산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스갱 아저씨는 ‘블랑께뜨를 절대 산에 보낼 수 없’다며 외양간 안에 가두는데요. 여러분은 스갱 아저씨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보셨나요?


그녀 : 스갱 아저씨는 키우는 염소마다 산으로 올라가 늑대에게 물려 죽자 이번에는 ‘길들이기 쉬운 어린 염소’를 사옵니다. ‘풀밭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말뚝을 박고, 목줄을 길게 해서 염소를 매어 놓’고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블랑케트는 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싶어 하지요. 블랑케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스갱 아저씨는 결국 외양간에 가둡니다. 스갱 아저씨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저는 스갱아저씨가 '어리석은 독재자'라고 생각했어요. 똑같은 방법으로 여섯 마리나 잃어버리다니. 게다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블랑케트를 아예 외양간에 가둬버렸잖아요. 그런다고 해서 블랑케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요. 오히려 그런 행동이 블랑케트의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더 북돋는 셈이 되지 않았을까요."


오래전 파랑새판을 읽어 편지 부분을 잊고 있었다는 그녀는 최근 북비 것만 보고는 계속 '부모와 자식관계'에 이입된다고 했다.


"스갱아저씨와 블랑케트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비치더라고요. 스갱아저씨가 블랑케트를 보살피고 키우는 모습이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자식이 컸는데도 자기 울타리 안에 두고 걱정하는 모습도 부모를 닮아 있는 것 같고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럼 북비에서 편지를 뺀 건 일부러 그런 걸까요? 생각의 폭을 넓히려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해 보라고~? 서로 웃으며 하하 호호거리다 한참을 떠들었다. 각자의 자식과의 관계에 대해, 주변의 사례, 보고 들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삼천포로 빠졌다. 아하! 이래서 논제가 필요한가 봐요, 하며 다시 책 이야기로. 다음은 선택 논제였다.  


나 : 산으로 올라간 블랑께뜨는 이리저리 뛰놀며 자유를 만끽합니다. 젊고 멋진 검은 영양 한 마리와 사랑을 속삭이고요. 저녁이 되자 집으로 돌아가는 양 떼를 보며 우울해지고, 잊고 있던 늑대 생각을 떠올립니다. 마침 ‘스갱 아저씨가 나팔을 불며 블랑께뜨를 애타게 찾’는데요, 여러분이 블랑께뜨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집으로 돌아간다/산에 남는다)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운을 뗀다.

"저는 집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어쨌거나 목숨과 맞바꾸고 싶지는 않거든요. 집으로 돌아가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라면 산에 남습니다. 누구도 아닌 스갱 아저씨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거든요. 블랑케트를 한 번 잃어버렸으니 오히려 더 꽁꽁 묶어둘 것 같고요, 또 자유를 한번 맛보았기 때문에 돌아가기 힘들 것 같아요. 스갱아저씨 밑에서 살다 죽느니 차라리 그냥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겠어요.ㅎㅎ"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뽑은 선택논제에, 나 스스로 모순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논제 : 블랑케트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 안락한 스갱 아저씨의 집을 나와 산으로 올라갑니다. 저녁이 되어 늑대와 마주친 블랑케트는 ‘늑대를 해치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르노드만큼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늑대와 맞서 싸웁니다. 실패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블랑케트처럼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죽음과 자유를 맞바꾼 블랑케트의 선택에 공감하십니까? (공감한다. / 공감하기 어렵다.)


이렇게 물으니 나는 공감하기 어려운 쪽이다. 왜 그럴까. 서로의 선택논제를 살펴보았다.  


"제 논제엔 '스갱 아저씨'라는 상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오로지 블랑케트 입장에서만 '자유냐, 죽음이냐'를 언급했지요. 선생님 논제엔 스갱 아저씨라는 상황이 담겨있고요."


자유로운 삶과 안전한 삶 중 무엇을 택할까. 종종 삶 앞에 놓이는 질문이다. 흔히들 젊었을 때는 자유를, 나이가 들면 안전을 추구한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당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또 내용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누구는 선택의 기로에서 수천수만 번 고민하지 않는다던가.

한 사람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 듯,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자유와 안전에 대한 추구가 공존한다.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인 삶의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 명쾌하지 않다.  

  

이후엔 알퐁스 도데가 이 책을 썼던 시기, 당시 프랑스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타는데 어느새 휘황찬란한 베이커리의 불빛이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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