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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Oct 31. 2023

'진실의 기둥'에 쌓아 올린 감동

- 대만작가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를 읽고

소설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경우가 있다.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현실을 반영한 ‘진실의 기둥’에 쌓아 올린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투영할 때다. 대만 작가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비채, 2023)가 그렇다. 대만 최초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 우밍이는 1997년 소설집 <오늘은 휴일(本日公休)>로 등단했다. 2000년 <나비탐미기>로 타이베이 문학상 수상, 2007년 장편소설 <수면의 항로>가 아시아 위클리 선정 중문 소설 베스트 10에 선정되면서 대만 문단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로 부상했다. 2011년 출판된 장편소설 <복안인(複眼人)>으로 그 이듬해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소설 부문 대상을, 2014년 프랑스 문학상 리브르 앵쉴레르상을 수상한, 저력 있는 작가다.     


이 책에서 자전거는 대만의 역사다. 일본에서는 자전차, 민남어(중국 푸젠성과 대만)로는 철마 또는 공명차, 중국 남부에서는 단차 또는 자행차로 불리던 자전거. 만들어진 때에 따라 이름과 용도가 달라 시대를 반영하는 물건이 되었다. 아들 ‘청’의 자전거에 대한 열정은 실종된 아버지에게서 비롯된다. 20여 년간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함께 사라진 자전거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청은 고물 장수 아부와 행복표 자전거 수집가 사오샤를 통해 마침내 아버지가 탔던 자전거를 찾는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청은 자전거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세대의 역사이기도 한 대만의 역사와 마주한다. 

     

자전거는 타임머신 같다. 자전거의 행적을 좇다 보면 현실과 과거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한때 ‘교코의 집’이라는 카페에 전시용으로, 다른 한때는 전쟁 중 운송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행적을 좇으며 알게 된 사진작가 압바스의 과거를 통해 일본의 대동아 전쟁에 참여해 수몰된 사람들을 만난다. 동남아 전장터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압바스의 아버지 루쏘야를 볼 수 있다. 루쏘야가 있던 일본군 은륜 부대는 자전거를 짊어지고 밀림을 헤매고 흙탕물을 건넌다. 숲은 죽음의 냄새로 가득하고 많은 목숨은 촛불 꺼지듯 사라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이 책은 황폐한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나비공예사였던 사비나의 엄마 아윈, 무 분대장의 연인이자 코끼리를 사랑했던 노부인 스즈코의 기억을 통해서다. 나비서식지가 파괴될 때까지 나비채집을 멈추지 않았던 인간의 만행은 실제 나비 가공업의 역사를 보여준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인간이 자연에 우선이었다. 전쟁을 앞두고 먼저 죽임을 당해야 했던 수많은 동물, 수송대 역할을 하다 버려진 코끼리들. 일본군이 실제로 미얀마에서 코끼리 수송대를 조직했던 역사적 사실을 전한다. ‘진실의 기둥’에 쌓아 올린 이야기가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대만과 자전거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다.

    

책을 덮고 나면 마치 한 편의 대하 드라마를 본 것 같다. 현세대와 과거 세대를 아우르고 연결되며 대만이들이 겪었던 100여 년의 시대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청과 그의 아버지 싼랑, 종군 사진기자 압바쓰와 아버지 바쑤야, 사비나와 그녀의 엄마 아윈, 무 분대장과 연인 스즈코. 그들은 자전거를 통해 만나고 연결된다. 내용은 방대하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짜임새가 탄탄해 저절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자전거를 복원하듯 작가는 소설을 통해 100여 년의 대만의 역사를 복원했다. 오래된 자전거를 복원하려면 자전거에 켜켜이 쌓인 녹과 시들고 썩게 만든 시간의 힘에 맞서야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역사가 독자들의 온몸에 잊지 말아야 할 기억으로 스며들었다. 소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게 했다면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는 성공한 셈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일제의 침략과 세계 2차 대전이 훑고 간 대만의 역사, 그 시대 인간들의 삶과 죽음, 황폐한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혹성. ‘마음껏 사랑할 수도, 마음껏 애도할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푸씨 아저씨를 통해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눈에 보이는 물건은 언젠가 망가지거나 떨어져 사라지고 만다는 나의 말에
푸씨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똑같아. 언젠가 망가지거나 떨어져 사라지지.”
그럼 이 물건들을 간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중요한 건 ‘망가지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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