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12월의 어느 날 - D010 간선도로, 트라브존(Trabzon)
- 옛 비단길이 지나던 트라브존은 흑해 연안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분주한 도시이다.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아타튀르크 광장은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처럼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이곳에는 독실한 무슬림이 많은지 예배 시간이 되자 모스크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공간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코로나 때문인지 모스크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직접 가지고 온 예배용 융단이나 골판지를 바닥에 깔고 바깥에서 예배를 드렸다.
주말 외출 금지 조치로 인해 사람들은 내일부터 이틀 동안 감금 생활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고 그들의 눈빛에는 '오늘 모든 것을 해치워야 한다!'라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주말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한다는 건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불만은커녕 터키 행정부가 이 소식을 미리 알려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지난해 이스탄불에서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말이다.
지난해 4월의 어느 날. 터키 행정부는 이스탄불을 포함한 터키의 주요 도시에 주말 외출 금지 조치를 명했다. 근데 그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이 조치를 명했을 때, 주말까지 불과 두 시간만을 앞두고 있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1,500만 명에 넘는 이스탄불의 모든 시민은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실타래처럼 서로 얽히고설키며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데 급급했다. 정부의 멍청한 탁상행정 때문에 사람들은 코로나 감염의 위험은 물론 깔려 죽고 치여 죽고 굶어 죽을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았고 트라브존 바자르에는 활기와 평화가 가득했다. 터키의 바자르는 대체로 은행과 식당, 디저트 가게, 고급 브랜드 및 화장품 가게가 즐비한 주 거리를 중심으로 의류 골목, 찻집 골목, 주방용품 골목, 귀금속 골목 등이 방사형으로 넓게 퍼져 있다. 트라브존은 항구도시답게 해안 근처에 조그마한 어시장도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바닷가 사람은 다 똑같은지 그들은 호쾌한 목소리로 호객행위를 했다. 간간이 빵 가게도 눈에 띄었는데 거기에는 트라브존의 명물인, 사람 머리만큼이나 큰 트라브존 빵을 팔고 있었다.
귀금속 골목에서 사람들은 별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쇼윈도 너머의 금붙이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또 다른 트라브존의 명물, 트라브존 금팔찌(trabzon hasırı)가 전시되어 있다. 순금을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뽑아내 수작업으로 한 올 한 올 엮은 이 금팔찌는 금을 좋아하는 많은 터키 여성에게 있어서 선망의 대상이다. 당연히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서 평생에 결혼식에서나 차볼 법했다.
결혼식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터키 결혼식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로 가족과 친척, 하객들이 신랑과 신부의 몸에 귀금속이나 현금 등 값진 물건을 달아주는 행사가 있다. 일종의 축의금이라고 보면 되는데 금은 터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물품 중 하나이다. 터키 사람들은 고급스러움을 좋아하고 언제 휴짓조각이 될지 모르는 터키 통화와는 달리 금의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부잣집 결혼식이라면 클레오파트라 못지않게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신부를 볼 것이고 가난한 집안의 결혼식이라면 금은커녕 100리라짜리 화폐조차 구경하기 힘들지 모르겠다. 그래도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신부는 그 순간만큼은 부자가 된 기분이 들지 않을까? 물론 이런 건 크게 상관없을지 모른다. '시간조정연구소'의 한 표현을 인용하자면, 가정의 분위기가 화목하다면 일정한 한도를 넘어서지 않는 가난은 그렇게 끔찍한 것도, 견딜 수 없는 것도 아닐지 모르니까. 신부가 옆에 있는 신랑과 자신을 축하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 재물로 밝은 미래를 꿈꾼다면 그걸로 된 거다.
나는 보즈테페 언덕(Boztepe hill)에 올라 트라브존의 전경을 감상한 뒤 방파제로 둘러싸인 작은 포구를 찾았다. 흑해의 거친 파도 때문인지 흑해 연안의 도시들은 대개 이렇게 방파제를 쌓아서 만든 작은 포구가 있었다. 항구도시라는 게 무색하게 정박한 배는 그리 많지 않았고 배들은 쪽배처럼 조그마했다.
방파제 끄트머리에 서 있던 나는 동쪽 바다 너머로 횡으로 길게 늘어선 거대한 산맥을 보았다. 눈 덮인 하얀 산봉우리는 석양빛을 받아서 희미한 분홍빛을 발했고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눈앞에 있는 이 장엄한 산맥이 터키의 폰투스 산맥인지 아니면 조지아의 캅카스 산맥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렴 어떨까, 내 마음은 첫사랑과 재회라고 한 듯 설렜다. 눈이 덮여서 가지 못하던,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국경이 봉쇄되어 가지 못하던 내 마음속에서 저 산봉우리들은 이미 조지아였으니까.
아! 조지아.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있지만 지금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 터키 사람들도 놀라는 대자연이 있는 곳, 갈 수 없으니까 더욱 가고 싶은 곳. 언젠가 길은 다시 열릴 거라 믿는다. 그때까지 이 여정에서 내가 살아남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