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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ug 12. 2022

여행자는 고독하지만...

터키(D+303) 12월의 어느 날 - 리제 지방



아르데센이라는 불리는 흑해 연안의 작은 도시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 나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흑해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아이델(Ayder)을 구경하기 위함이다.

 

아이델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가파른 산비탈에 빼곡히 심어놓은 홍차 밭이 나를 반겨주었다. 터키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 닦고 잠이 들기까지 끊임없이 마셔대는 홍차는 대부분 이곳 리제 지방에서 생산된다. ‘Rize’라는 지방명은 산비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ρίζα’에서 유래되었다.

 

터키는 국민 1인당  소비량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터키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에 얽힌 재밌는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터키 사람들이 차를 물처럼 마시기 시작한  불과 반백 년이  되지 않는다. 차를 좋아하는  다른 국가, 영국에서 대중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무려 350 전이라는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없다. 대체  반백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세기 중후반까지 차는 터키 사람들에게 그렇게 익숙한 음료가 아니었다. 터키 사람들은 물 이외에는 커피를 주로 마셨다. 1475년 오스만 제국에서 세계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생긴 이래, 커피는 터키 사람들에게 ‘영혼의 음료, 선택의 음료’로서 오랫동안 그 위상을 지켜왔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트 2세가 밤마다 무시무시한 철퇴를 들고 다니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머리통을 빠개 놓았지만(그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정치적 음모를 꾸민다고 믿었다) 터키인들은 커피를 포기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터키인들의 커피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터키는 최대의 경제 위기를 겪게 된다. 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로서 터키는 석유를 제외한 모든 물건의 수입을 금지했고 여기에는 커피도 포함되어 있었다. 커피는 기후 요건 상 터키에서 재배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커피를 대체할 음료를 찾아야 했고 이때 차 한 잔은 모든 터키 사람들을 순식간에 매혹했다. 카페의 직원은 손님에게 ‘쓰게 탈까? 달게 탈까?’가 아닌 ‘차 마실래? 과일 주스 마실래?’라고 묻기 시작했다. 차는 음료용으로서 커피를 완벽하게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커피에 얽힌 터키의 문화 또한 그대로 흡수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함께 마시는 차 한 잔이란 터키인들에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나는 더 깊은 산속으로 페달을 밟아 나아갔다. 높은 산비탈에서 효과적으로 찻잎을 나르기 위한 도르래와 와이어, 이 고장의 유명한 문화재인 오스만 스타일의 아치형 돌다리 등 다채로운 풍경이 내 눈을 즐겁게 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주변 경관을 조망할  있는 포쿠트 고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센유바라고 하는 마을에서 멈춰야 했다. 지도를 보니 감당할  없는 오르막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12km 가는데 1,600m 올라간다. 대충 계산해 보니  길의 평균 경사도는 13%.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지하 주차장의 경사도는 대략 14%이다. 이와 같은 길을 12km 가는 것인데 쉽게 말해 그냥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잠시 숨을 골랐다. 저지대와 달리 고지대인 이곳풍경춥고 삭막했다. 나무들은 이미 월동준비를 마친  벌거벗었고 졸졸 흐르는 계곡물은 보는 것만으로 한기가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집들은 하나같이 높은  비탈면에 지어놓았다. 길도  보이는  저런 곳까지 어떻게 올라가는 걸까? 흔히들 자연을  삼아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안고 있지 않을까? 마치 홀로 하는 여행처럼 말이다.


홀로 하는 여행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여행은 익숙한 것을 떠나는 행위이기에.


고독은 내 여행을 관통하는 단어였다. 혼자 하는 자전거 여행은 우주를 떠다니는 소행성과 같았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혼자 달리고, 길바닥에서 혼자 먹고, 숲속에서 혼자 잠을 잤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짧은 순간 나를 스쳐 갈 뿐이었다.


내 주위에는 언제나 고독이 맴돌았다. 때때로 고독은 내가 가진 모든 짐보다도 나를 더 무겁게 짓눌렀고, 온종일 쏟아지는 장대비보다도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밤의 어둠 속에서는 그 존재를 더 명확히 드러내며 나를 괴롭혔다. 혼자 하는 일들은 언젠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독만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고독은 여행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고독하기에 자연이 주는 위안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 거고, 고독하기에 사람과의 만남이 더 기뻤던 거다. 고독하기에 내가 놓고 온 것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독하기에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건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전제한다. 고독은 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행복했던 기억과 슬펐던 기억, 내 안의 이타심과 열등감 등 나를 둘러싼 모든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했다. 선한 모습도 있고 추악한 모습도 있었다. 자랑스러운 모습도 부끄러운 모습도 있었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 현재의 나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이 좋았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자연을 아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내가 좋았다. 나는 부족하지만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재였다. 고독은 결국 내 이면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더이상 고독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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