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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ug 21. 2022

학교 대문 앞에 텐트를 친다면?

터키(D+470) 6월의 어느 날 - 리제 어느 산골 마을(리제 아타튀르크 초등학교)



- 어젯밤 장대비를 피해서 들어간 곳은 산골 마을의 어느 초등학교였다. 나는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처마 밑에 당당하게 텐트를 폈다. 내일은 목요일이었지만 눈곱만큼도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학생들은 학교에 오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조치로 전국의 모든 학교가 휴교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해가 떴지만 나는 텐트 안에서 한없이 뭉그적거렸다. 캠핑의 가장 기쁜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밤하늘의 별을 볼 때와 아침햇살 아래 여유와 평화로움을 만끽할 때이다. 그늘이 드리워진 쾌적한 텐트 안에 누워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 산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정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나는 행복했다. 불청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느닷없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가 내게 말했다.


“이 학교 직원인데요. 이제 곧 등교 시간이거든요. 죄송한데 텐트를 걷어주셔야 할 거 같아요.”
“뭐라고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휴교인 줄 알았는데.”
“그랬었죠. 근데 오늘부터 다시 등교하게 되었어요.”


이런 빌어먹을! 가는 날이 장날이라지만 하필 오늘부터 재등교라니.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나에게 욕을 내뱉을 시간 따윈 없었다. 하나둘 학부모와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만에 등교를 했더니 어떤 집 없는 불쌍한 외국인이 학교 앞에서 텐트를 치고 살고 있었어요.’


이게 오늘 아이들 일기장의 첫 문장이 되지 않을까? 서둘러서 자리를 정리하는 와중, 사람들을 보자 그들의 시선이 묘하게 계단 난관의 어느 한 부분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자 그곳에는 어젯밤 홀딱 젖어버린 내 옷가지와 더러운 양말 그리고 속옷이 널려 있었다. 아차! 나는 빛의 속도로 그것들을 치웠지만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치부는 치울 수가 없었다.


'그 불쌍한 외국인의 팬티는 파란색이었어요.’


아이들의 일기장에 추가될 또 다른 문장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아이들은(대부분 저학년이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는 학교로 들어갔다. 나는 부끄러워서 그런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마침내 정리를 마치고 떠나려는 참에 남자 직원이 나를 붙잡는다. 설마 풍기문란죄로 나를 경찰서에 넘기려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는 나에게 학교 구경도 하고 차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권한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학교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학생 수가 백여 명이 조금 넘는다는 이 학교는 오늘부터 격일로 저학년과 고학년이 번갈아 가면서 등교를 한단다. 복도나 층계참, 벽면에는 아이들의 글이나 그림, 사진 따위가 꾸며져 있었다. 일 층 복도에는 연도별로 LGS 시험(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8학년이 치르는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학생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떤 여자아이의 사진은 3번이나 등장했는데 그 아이는 분명 이 학교가 자랑하는 수재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먼지가 쌓이고 아타튀르크에 관한 책만 잔뜩 쌓여있는 도서관이 조금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시골 학교다운 정다움이 풍기는 학교였다. 누가 터키의 학교 아니랄까 봐 직원들이 차를 만들고 마실 수 있는 휴게 공간도 눈에 띄었다.


학교 구경을 마친 , 나는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님, 그리고 영어 선생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얼마 , 수업 시작 10 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슬슬 떠나려는 내게 그들은 뜬금없이 이런 제안을 온다.


“이제 곧 수업 시작하거든요. 함께 교실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가시죠.”
“네? 뭐라고요?”


 돌발적인 제안에 나는 미처 거절을 하지 못했고 얼떨결에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나는 교단 위에 덩그러니  있었다.  앞에는 무려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다 예쁘지만 8~9살 정도로 보이는 요 터키의 아이들은 유난히 귀엽고 깜찍했다. 그런 아이들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은 내가 터키에서 보았던 그 어떤 광경보다 더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동시에 끔찍한 광경이기도 했다. 무대에 올랐다가 내 이름 석 자는 물론 가문에 먹칠까지 한 흑역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심각한 무대공포증을 가진 내게 이런 자리는 행여 꿈에 나올까 봐 무서운 것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했다.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아마 털썩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북극성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그 눈빛을 보자 내면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용기가 자라났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말만 하지 말자. 흥분해서 괜히 나대지만 말자. 사람처럼만 말하고 사람처럼만 행동하자.’


나는 간단한 자기소개 이후, 아이들과 질문 답변 시간을 가졌다. 영어 선생님이 통역을 도와주었다. 아이들은  이상한 외국인이 미심쩍은지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어느새 교실 안의 아이들은 너도나도 집게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며 질문을 하려고 아우성이었다.


“좋아하는 터키 음식이 뭐예요? 좋아하는 색깔은? 미국에 가 보았나요? 터키 도시 중 어디가 제일 좋아요? 여행하면서 위험한 적은 없었나요? 자전거가 고장 나면 어떡해요?”


어쩜 이렇게 건전하고 나로서도 대답하기 즐거운 질문을 하는 건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답게 가끔 생뚱맞은 질문도 튀어나와 나를 당혹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질문마저도 ‘너 나한테 소개해줄 한국 여자 있어?’, ‘한국에서 핸드폰은 싸?’, ‘한국과 터키 중 어디가 더 좋아?’로 요약정리되는 터키 남성들의 일차원적인 질문보다는 백 배는 나은 것이었다.


어느새 주목받는다는 긴장감은 저만치 물러나고 나는 아이들만큼이나 신이  있었다. 너무 신이  나머지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관심받는 일이 이렇게나 기쁜 줄이야. 이런 거라면 어디서든 얼마든지   있을  같았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없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언제 내게 관심을 가졌냐는  뒤도  돌아보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교실은 순식간에 관객들이 빠져나간 영화관처럼  비어버렸다.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저러지 않았나. 저러지 않는 순간부터 아이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 어른이 되어 가는 거다. 아이일  아이답게 행동할  있다는   행복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 와중에도 나를 위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내게 있어 그 아이들의 존재는 은근한 감동이었다. 그래, 또래라도 성숙하고 사려 깊은 아이들은 항상 있었지. 걔 중 몇몇 여자아이들이 내게 수줍게 다가왔다. 가만히 보니 아까 질문을 가장 많이 했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영어 선생님이 사진 찍는 걸 도와주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이들은 언제 내게 관심이 있었냐는 듯 복도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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