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 이 글에는 <와이우먼킬> 시즌 1과 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왓챠 익스클루시브 드라마인 <와이 우먼 킬>은 시즌 1을 너무 재밌게 봐서 시즌 2가 공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 기대를 많이 했었다.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열심히 챙겨봤는데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아 비평을 해보려고 한다.
아직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 두 시즌은 '여성의 살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는 점 외에는 완전히 다르다. 시즌 1은 캘리포니아의 한 저택에서 1960년대, 80년대, 2010년대에 살았던 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다. 반면 시즌 2는 1940년대의 평범한 주부 '알마 필콧'를 둘러싼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우선 시즌 1이 좋았던 이유를 나열해보겠다.
1. 각 시대의 다양한 여성상이 담긴 입체적인 캐릭터들
1960년대의 순종적인 아내이자 가정주부인 베스 앤, 1980년대 이혼을 두 번이나 하고 세 번째 남편과 사치스러운 삶은 사는 시몬, 2010년대 페미니스트 바이섹슈얼 변호사이자 남편과 'Open marriage' 관계에 있는 테일러까지, 너무나도 다른 세 캐릭터들이 소개된다.
이 캐릭터들은 각 시대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베스 앤은 남편의 외도 상대와 친구가 되며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루시 리우 역시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친구로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테일러 역시 남편을 사랑하지만 갖고 있는 불만이 드러나며 각 인물마다 여러 겹의 감정을 갖고 있다.
주변 인물들이 각기 다른 여성 혐오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테일러의 남편 '일라이'는 페미니스트 여성과 결혼하고, 오픈 메리지에 동의까지 한, 비교적 진보적인 인물인 듯하지만 제이드가 아침을 차려주고, 집안을 치우는 등의 전통적인 여성상에 맞는 행동을 하자 '가정적인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표현하고 그것이 '자신의 inner caveman'을 깨운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또한 그는 사실상 무직 상태임에도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2. 여성 서사
제목부터 와이 '우먼' 킬이다. 여러 시대의 다양한 여성들이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를 다루며, 그 과정에서 여성 간의 연대를 보여주기도 (베스 앤-에이프릴), 여성 간의 갈등 (테일러-제이드), 여성의 욕망 (시몬-토미), 퀴어 서사까지 다룬다 (테일러-제이드 / 칼 ).
3. 다양한 '살인'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감정과 모티브로 '살인'을 하는데, 이들의 '살인'은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베스 앤은 가정폭력을 하는 이웃 남자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도록 치밀한 설계를 한다. 베스 앤의 남편은 단순한 불륜남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가 죽은 이유를 제공한 것이 불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바람을 피우고, 오히려 그 책임을 베스 앤에게 덮어 씌우는 파렴치한이다. 반면 루시 리우는 전 남편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의 안락사를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테일러는 정당방위로 제이드를 죽인다.
이토록 다양한 살인이라니.
4. 각 에피소드별 연출
특이하게도 서사가 쭉 이어지는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와이 우먼 킬 시즌 1>은 각 에피소드마다 색다른 연출을 보여준다. 탱고를 이용한 연출을 한 경우도 있고, 남편들을 인터뷰한 경우도, 이 집의 이웃에 사는 한 남자를 내레이터로 내세운 경우도 있다. 매 화마다 새로운 연출이 이 드라마에 쫀쫀함을 주는 듯하다.
5. 빠른 전개와 반전
내가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에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지치기 때문인데, 이 드라마는 지치지 않는다. 그만큼 전개가 빠르고, 심지어 예상하기 힘든 서사를 풀어나간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
자 그럼 시즌 2를 비교해서 살펴보자.
1. 증발해버린 형식의 신선함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른 시대의 이야기'라는 신선함이 없다. 그냥... 한 시공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버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외에 신선한 설정? 없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에피소드별 연출도 사라졌다. 한 명의 내레이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즌 1의 칼 역할을 했던 배우) 내레이션을 하며 전개된다.
2. 여성 서사?
여성 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나는 <와이 우먼 킬 시즌 2>의 경우 여성 서사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여성 서사에 상응하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 알마는 주체적으로 사건을 전개해나가며, 이 외에도 리타 카스티요, 디 필콧 등 다양하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서사가 페미니즘적으로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주인공 알마는 소심하고 수수한 가정주부에서 화려하고 강한 여성으로 변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여가며 그것을 쟁취하는 사이코패스로 성장(?)한다. 그래서 그녀가 이룬 것은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화려하고 고상한 가든 클럽에 어울리는 외양과,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이다.
.. 뭐 별 의미가 없다.
3. '와이 우먼 킬'이 아닌 '와이 쉬 킬드(Why she killed)'
시즌 2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평범한 1930년대 가정주부였던 알마 필콧이 남편의 연쇄 살인을 알게 된 후, 그 방식을 이용해 연쇄 살인을 하며 사이코패스가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왓챠가 강조했던 "시즌 1보다 많이 죽습니다!"는 사실이었으나, 그 수많은 캐릭터들의 죽음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그들은 그저 알마의 계획에 방해된다는 사실에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심지어 이 죽음들에는 오락적인 재미조차 없다. 너무 많이 죽고, 너무 비슷하게 죽어서 '아, 또 죽네...'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나는 솔직히 시즌 내내 '그래도 뭔가 마지막에 달라지겠지, 뭔가 있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가장 최악이라고 할 만한 결말로 끝이 났다. 결국 알마가 붙잡혀서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로서 생을 마감한 이야기, 그것도 그 관심을 즐기며 행복하게 죽은 결말이다.
결국 시즌 2는 '왜 알마가 죽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명할 필요도, 의미도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의 발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게 기존 미디어에서 보여줬던 수많은 사이코패스 서사와 뭐가 다른가. 그냥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없다.
물론 두 시즌 내내 드러나는 장점도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캐릭터이다.
다양한 나이대와 성 정체성, 인종, 문화적 배경, 체형의 캐릭터가 등장하며 각 캐릭터마다 매력이 살아있다. 예를 들어 시즌 2에도 가든 클럽 내에 퀴어 커플이 나오고 (알마가 그걸 알고 블랙 메일 하겠다고 협박하지만), 멍청하지만 잘생긴, 나이 많은 부자 여자들한테 붙어먹으며 사는 '스쿠터' 역시 기존에 남성에게 잘 부여되지 않는 캐릭터라서 재미있다.
또 193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갇혀 있지 않다는 점도 독특하다. 예컨대 알마의 딸인 '디'는 혼전임신을 하지만, 출산에 관해서는 아이의 아버지인 스쿠터와는 무관한 주체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디와 결혼하는 탐정 '번'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만약 진짜 30년대에 맞춰 고증했다면 디가 혼전임신을 했다는 사실,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사실, 백인인 디와 흑인인 번이 결혼을 한다는 사실 모두 엄청난 비난을 마주했을 것이고, 실행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그리고 이 이야기 안에서 그런 설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제작진은 그런 고증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나는 이 지점은 굉장히 칭찬할만하고, 더 많은 작품들이 이를 수용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꼭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모든 것을 고증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뮤지컬 '해밀턴'에서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안젤리카 스카일러, 엘리자베스 해밀턴 등의 역할에는 유색인종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오히려 이렇게 함으로써 뮤지컬의 테마 중 하나인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라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또 그러면서 동시에 미국이 갖고 있던 노예 문제 등을 없는 것처럼 치부하지 않고, 극 중 그것을 언급해 비난하기도 한다.
작품이 역사적인 사건, 배경을 다루고 있다면 그 시대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을 다루고 있는 현시대에 대한 고려 역시 필요하다. 지금 현시점에서 왜 예전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게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고려해야만 좋은 창작물이다.
제작진이 <와이 우먼 킬> 시즌 1의 매력 포인트를 확실하게 알았더라면 시즌 2가 훨씬 좋은 반응을 얻었을텐데, 정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