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이들은 문제가 없었다
초등학생이긴 하지만, 고학년이 참 어렵다. 3, 4학년까지는 잘 대할 수 있겠는데, 5학년부터는 가르치는 데 부쩍 힘이 더 든다. 그러고도 결과가 신통치 않다. 나는 아이들이 늘어난 학업 스트레스에 힘이 부치겠거니 생각하며 더 열심히 수업을 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5학년 아이들은 수업에 좀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다른 학년들은 정신없이 대화가 오고 가는데, 5학년 수업만 들려오는 대답이 유독 적다. 뭔가를 물어보면 "모르겠어요. 몰라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힘이 쑥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정말 잘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속상할 때마다 원장님께 상의를 드린다. 참고로 우리 원장님은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고 현명하신 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유치하게 들리거나, 심하게는 아부하는 걸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진실이란 거의 언제나 주관적인 것이기에, 내 생각이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어쨌든 원장님과 상의하면 나는 언제나 답을 얻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원장님께서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원인을 제시하셨다. 내 얘기를 찬찬히 들어보시더니 오늘 일은 라포 문제라고 하시는 것이다. 즉, 나와 아이들과의 친밀감 문제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5학년은 그 유명한 중2병에 걸릴 나이도 아니고, 학업이 유독 어려워지는 시기도 실은 아니었다. 상황도, 아이들도 문제가 아니라면 남는 변수는 하나다. 즉 오롯이 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들으니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내가 처음 다녔던 학원에서도 나는 5학년 아이들이 참 어려웠다. 유독 내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반이었다. 결국 그때 나는 5학년들이 모인 반을 다른 선생님께 넘겨드렸었다. 결국 그들이 아니라 내 문제였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같은 상황이 한 번은 우연일지 몰라도, 두 번은 우연일 수 없으니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담 나의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나의 5학년 시절을 곰곰이 되새겨봤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맡겨져 키워졌다. 그 전에는 부모님이 맞벌이셨던만큼, 학교를 갔다오면 같은 반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놀이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내가 4학년이 되자 아버지께서 사법고시를 다시 보시기로 결정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결정을 반대하셨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두시기가 미안하셨던 아버지는, 조건에 덧붙여 어린 나도 돌보시기로 어머니와 약속하셨다.
글쎄, 너무 나이브한 결정이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우리 아버지는 상대가 누구든 날카로운 비난에 익숙하신 분이셨다. 그 어떤 상황에도 상대 탓을 하는 능력(?)이 뛰어난 분이셨다. 그 상대가 사랑하는 딸이라도 말이다. 4학년 때 이후로 내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이루 말하기가 힘들다. 어떨 때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심적 고통이 더 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였는데, 하루종일 나를 탓하고 비웃고 깔보는 아버지를 마주하며 영혼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아마도 스트레스가 심하셨을 거라고 이해해볼 수는 있다. 세상과 어머니에게 뒤쳐지는 기분, 시험에 대한 부담감과, 공부를 하는 데 짐이 되는 나에 대한 원망. 그러나 육아가 그렇게 만만한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아버지 잘못이다. 날 맡아키우기로 어머니와 약속한 아버지 잘못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탓이 아니었다고. 내 탓은 아니었다고.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욕하고, 학교에서도 다른 학생을 비웃으면서 상처를 주곤 했다. 그 이전까지 착하고 수더분하기로 소문이 나있었던 나였다. 나는 180도 돌변해버리고 말았다. 부정적이고 시니컬하고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애로 변해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가장 소중한 사람조차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걸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초등학교 5학년들을 믿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정확히 왜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상처를 받았던 때라서 그런지, 상처를 주던 때라서 그런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나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주거나 믿어선 안된다고. 전자든 후자든 분명한 것은 나는 아직 어린 꼬마애의 상처받은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5학년들은 내가 자기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나보다고, 나는 생각했다.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마음과 상태에 너무나 민감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미안했다. 마음을 열지 못하면서 너희들은 나에게 마음을 열라고 강요한 것 같아 미안했다.
앞으로는 달라야 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고, 다정하게 대해줘야겠다고. 5학년 아이들은 내 불행에 대한 책임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행복과 불행에 책임이 있는 건 나이다.
잘 대해줘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아이들이 잘 공부할 수 있도록, 선생님인 나를 좋아하고 믿을 수 있도록.
좋은 선생님이 되어줘야겠다.
202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