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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Dec 22. 2024

따로 또 같이  부부의 삶

영화를 보며 이렇게 눈물을 찔끔 거려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메마른 가슴에 한줄기 소나기 같은 영화였다.

중국 영화 "우리, 태양을 흔들자"라는 영화를 OTT  플랫폼을 통해서 시청했다.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 '뤼투'를 보며 2004년이 떠올랐다.

그 해는 내 삶의  최악의 한 해였다.

뇌종양  판정을 받고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한 달 넘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였다.

나는 왜 내게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냐며 자책했지만 결국에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나는 아내에게 영화 속의 추도문과  비슷한 예약문자를  보냈었다.

문자는 내가 수술 중 일 때 아내에게 도착했고 아내는 오열했었다.

입원해 있는 내내 아내는 나를 극진히 간호했고 나는 사지에서 살아 돌아왔다.


뇌종양  환자'뤼투'와 신장병 환자 '링민'이 무전기로 통화하면서 '힘내자'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마음속으로 힘내자고 외치고 있었다.

아내도 수술실 앞에서 내게 힘내자고 했었다.

아내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결혼한 지 만 27년이 되었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같은 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산다. 한 이불을 덮고 자지는 않지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에 가졌던 애틋함이나  끈적거림이 희석되어 가는 듯해 아쉽다.

문득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농담이 생각나 쓴웃음이 난다.


신혼 초의 눈에  콩까지나 달달함은 사라지고 없지만 묵은 된장처럼 은근한 맛은 있다.

어제는 독서모임에서 주최한 북토크에 갔었다.

북토크 모임사진을 아내에게 보냈더니 대뜸 거의 다 여자라며 은근히 질투심을 드러냈다.

그래도 아직 나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 듯해 위안이 되었다.


중년부부의 식어가는 애정은 서로의 무관심과 노력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혼 초의 그 열정을 되살리기는 어렵겠지만 하나씩 고쳐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집에서 요리도 자주 하고 설거지도 도와주곤 했는데 요즘은 가물에 콩 나듯이 이벤트성으로 하고 있다.


아내가 해주는 밥이나 빨래, 설거지,  청소 이런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습성에서 모든  불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좀 더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겠다.

이제는 마주 보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 주지는 못해도 같이 앉아서 마누라가 보는 곳은 바라봐주는 노력이라도 해야겠다.

문득, 영화 속의 대사가 떠올랐다.


"너 대신 살기 싫어. 너와 함께  살고 싶어"


부부는 같이 살아야 한다.

살 비비대며 지지고 볶고, 울며 웃으며 그렇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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