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의 현실과 염원
이 곳에서 알게된 한 아이가 있다. 이민 1.9 세대. 1.5도 아니고, 2도 아니고, 0.9인 이유는, 2살 때 이 곳에 왔기 때문이다. 피는 한국인이지만, 사람은 캐네디언인 그런 사람. 최근에는 이 아이를 주기적으로 만나는데, 하루는 술을 마실 때였다.
"얼마 전에 만난 한국인 할머니가 다른 나라에 있어도 한국인인걸 자랑스러워 하라고 했어. 가끔 정말 혼란스러워. 우리 엄마도 똑같은 얘기를 하거든. 그럴거면 왜 여기에 데려온거야? 모순 덩어리. 심지어 난 학교에 가면 캐네디언인 걸 자랑스러워 하라고 들어. 나는 뭐지? 어떤 사람들에겐 한국인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캐네디언이야.
내가 캐네디언 사회에 녹아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일도 더 열심히 했어.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주류사회에 편승해야 한다고 압박해. 만약에 편승한다고 치자. 거기서 나는 한국인이라고 해야해, 아니면 캐네디언이라고 해야해?"
한국어를 거의 못할 정도로 영어를 충분히 하고, 이 곳에서 정말 어릴 때부터 자라 문화도 익숙하고, 캐나다 최상위 대학 3 곳 중 하나에서 열심히 공부하기에 정체성의 혼란이나 주류사회 편승에 대한 압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였다. 주류사회, 주류사회. 이민 얘기만 나오면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 "이민해봤자 주류 사회로 편입하지 못하면 실패야." 같은 말들.
주류 사회(Mainstream Society) :
어떤 사회나 조직의 내부에서 영향력 있는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이 아이를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룸메이트와 룸메이트의 여자친구가 집에 있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룸메이트랑은 가족 같고, 여자친구와도 친해서 내가 엄청 시끌벅적하게 놀았는데 문득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왜 나랑 있으면 그렇게 조용해?"
단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난 그냥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언어의 문제인 듯 했다. 그래서 조금 찾아보았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성격이 바뀐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민 1세대는 영어가 원어민만큼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더 조용한 사람이 되는 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의도치 않은 오해도 받는다. 의사 전달에 몰두한 나머지 어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예이다.
본국에서 잘나가던 이민 1세대들이 타지에서 주로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게 아닐까 싶다. 인생은 설득의 연속인 만큼 성격은 성공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국어를 바탕으로 성공에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에선 새로운 성격이 파생된다. 이 성격은 새로운 문화에서 이상적으로 피어나기 어렵다. 그들 스스로도 그렇다. 깊은 대화를 나눠도, 외국어로 했더니 뭔가 속이 풀리지 않는 찝찝한 느낌. 삶의 낙 중 하나인 추억팔이를 함께 못하는 느낌. 나이가 들수록 본국 문화가 더 단단해져 살짝의 틈도 어렵다.
이민의 목적에 따라 성공의 기준도 달라지겠지만,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했다는 말은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을 물씬 들게한다. 그러니 이민의 목적이 평균의 삶 그 이상이라면 한국보다 힘들 수도 있다. 장밋빛 세상은 어디에도 없으며, 천국에도 그림자는 진다.
업무 특성 상 이력서를 굉장히 많이 받아본다. 그 곳엔 그들의 삶이 담겨있다. 그리고 많은 삶들이 좌절한다. 현실을 얘기해줄 때면 '당신은 이 곳에서 크게 쓸모가 없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책상 맞은 편 눈은 항상 갈 곳을 잃어 흔들린다.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고객이지만, 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이민은 레벨업이 아니다. 그저 새로운 시작일 뿐.
정돈되지 않은 생각이라 글이 조금 난잡합니다.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