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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Nov 08. 2023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육아불감증에 빠졌다.

“엄마, 슬프고 속상했어요.”     


아이는 자랄수록 감정 표현이 다양해졌다. 그리고 그 표현 방법은 나와 남편이 자주 쓰는 표현일 때가 많았다. 아이의 말속에서 우리가 보일 때마다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다짐 하곤 했다. 닮지 말았으면 싶은 것부터 닮아가는 게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가 자주 하는 표현 중 하나는 슬픔과 속상함이다. 엄마와 아빠의 말과 행동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는 슬프거나 속상하거나 둘 다였다. 가끔은 얼토당토않게 느껴지는 이유로 눈물을 보이거나 떼를 써서 곤란하게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는 그럴만한 이유였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돌아볼 만큼 여유가 없는 순간이 허다하다. 뭐가 그리도 바빴을까. 그 정도는 괜찮아, 그 정도는 속상할 일이 아니라고 내 기준으로 판단해버리곤 했다.    

 

집 근처 카페에 정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오며 가며 들려서 음료수만 후딱 챙겨서 올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잠깐을 위해서 아이를 카시트에서 내렸다가 다시 태웠다가 하는 일이 좀 힘들고 귀찮게 느꼈다. 아이에게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동요를 틀어주고는 냉큼 다녀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차에 혼자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안전불감증에 빠진 사람처럼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냐고 생각했다. 너무 조마조마했지만, 별일 없이 무사히 잘 지나갔다. 그래서 다음 방문에도 그렇게 하려던 때였다. 아이에게 지난번처럼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하며 내리려고 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도 같이 내리면 안 돼요? 차에 혼자 있으면 외로워요.”     


아이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별일 없었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에게는 잠깐이었지만, 차에서 홀로 기다렸던 아이에게는 막막하고 길었을 것이다. 나는 왜 그걸 진작 헤아려주지 못했을까. 아직 시계도 볼 줄 모르고, 시간도 모르는 아이에게 잠깐 기다리는 말이, 금방 오겠다는 말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불안한 말이었을까. 외로웠다는 말에 미안함과 자책감에 코끝이 찡해졌다. 생각이 짧았던 내 행동이 아이에게 줬을 외로움과 불안함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도 내색하지 않았을 뿐인데, 왜 당연히 괜찮았나 보다 생각했을까.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상태였다면, 이 실수를 얼마나 더 반복했을지 모른다. 아이가 조금 컸다는 이유로 무심코 했던 말이나 행동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화가 나지만, 참았어요. 엄마가 놀랄까 봐.”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렇게 노력해 왔는데, 요즘 또 엉망진창이다. 수시로 아이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올라오고, 그걸 참지 못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감정을 참지 못한 순간마다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의 실수를 인정하고,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럴 때면 아이는 엄마가 화내서 속상하고 슬펐으니 이제는 그러지 말라며 받아주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자기도 화가 나지만, 엄마가 놀랄까 봐 참았다고 말했다. 휴, 아이도 참는 화를 엄마인 나는 왜 그리도 못 참았을까. 아이가 혼자 마음을 삭이는 동안 왜 그걸 몰라줬을까. 평온한 엄마가 되는 것도, 하나의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도 더디고 멀게만 보인다.


엄마가 화내면 자기가 놀라는 것처럼 자기가 화내면 엄마도 놀랄 것 같아 참았다는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러면서 엄마는 매일 화만 낸다는 아이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10번의 사랑을 표현해도 아이에게는 1번의 화만 기억이 남는 것 같았다. 종일 사랑을 속삭이며 같이 놀아도, 아이는 엄마의 화난 모습이 오래 진하게 남는다는 것을 놓쳤다. 1번 화를 내도 10번 사랑해 주면 괜찮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합리화해 왔다.      



괜찮다고 생각한 순간마다 아니었다. 

괜찮은 건 나의 마음이었을 뿐, 아이 마음에는 다른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다는 것에 후회와 자책감, 미안함 등 여러 마음이 밀려왔다. 육아하며 내 몸과 마음이 지친다는 이유로 괜찮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흐린 눈으로 모른 척하진 않았을까. 아이가 괜찮지 않음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 내가 놓친 순간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육아가 길어질수록 안전불감증처럼 육아불감증에 빠진 것 같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설마 애한테 문제가 되겠어? 등 아이의 마음을 내 기준으로 판단해 왔다. 

여전히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어렵고, 엄마가 되어가는 건 막막하다. 

하지만, 남은 날들은 나도 아이도 괜찮은 순간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사진: Unsplash의 Ian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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