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찰나 - 참을 수 없는 '시작'의 가벼움
어렸을 때부터 낯설고 새로운 것을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한 번 걷게 되면 줄곧 그 길로 걷고 그 길이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잘 바꾸지 않았다. 어렵게 익숙하게 만들어 놓은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은 힘든 일을 스스로 선택하는 어리석은 일 같았다. 늘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고 비슷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던 시골의 유년기에서 나는 매우 편안함을 느꼈다.
내가 ‘시작’이 매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크게 느낀 것은 대학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며칠을 잠을 자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공간을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같은 친구들과 다녔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이렇게 많은 새로운 사람들이 모일 일은 전혀 없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지 않으면 대학 생활을 매우 힘들고 외롭게 보내야 한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기에 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일단은 참아보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모임 장소로 향했다. 시간 맞춰 장소에 도착한 나는, 수많은 신입생들의 군집을 보고 깨달았다. 나의 대학 시절은 외롭고 힘들 것임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불참한 이후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그때의 마음보다 더 큰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정도의 마음으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참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불참한 것이라면 나 자신이 이렇게 작아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자신의 결정을 행동에 옮기지 못한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다. 그리고 왜 나는 그래야만 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시작’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시작’하게 된 것은.
봉사 동아리에 가입했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국토대장정을 시도했고,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남도 여행을 시도했다. 수화기초반을 학교에 개설해서 자격증을 땄고, 대학 축제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일에 도전했다. 20살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뭐든지 일단 해보려고 노력했다. 문을 열기가 아무래도 두려워지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러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막상 들어가 본 새로운 세계에는 내가 걱정했던 만큼의 불안함과 두려움은 없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처음은 어색하고 낯선 것이었다. 나라고 해서 딱히 그것이 더 크거나 오래 가는 것도 아니었다. 20대 때의 ‘나’의 성향에 대한 반발심(아니면 노력)은 습관처럼 남아서 조금의 관심이라도 생기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일단 시작해 보았다. 오래 가든지 금방 그만두게 되든지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낯선 시공간이 힘들더라도 3번은 무조건 참았다. 3번을 참았는데도 힘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두었다.
지금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여전히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못 할 일은 더이상 없는 듯하다. 그런데 요즘 나의 ‘시작’은 시작한 것과 동시에 끝나는 것이 너무 많다. 아이를 키우며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핑계로, 해 보니 내 관심 영역이 아니었다는 자조로 급히 마무리지어 버린다. 한 번 해 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너무나 가벼운 ‘시작’이 많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본 것만으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하는 ‘시작’들은 소소한 취미의 영역일 뿐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들만 찾아서 시작해 보는 느낌이다. 오히려 내 삶의 중요한 영역에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이 거의 없다. 직장에서는 예전에 해봤던 일들을 다시 하려고 하고, 새로운 가치관이 담긴 것들은 아무리 작고 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거부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관점을 새롭게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딱 즐거움의 범위에서의 시작만 허락하고 있다.
‘시작’에 대한 상념 끝에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천금 같던 어린 시절의 ‘시작’은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었음을. 나도 모르게 그 무게가 느껴져서 오히려 쉽지 않았던 것임을. 젊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기같이 느껴지지만 오히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시기였기에 무엇을 하든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것을 ‘시작’한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 더 발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20살의 나는 단순히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미성년을 지나 성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숨을 고른 것뿐이었다. 어른이 되어 새로운 세상에 나아가는 첫 걸음이 어찌 가볍기만 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당연히 힘든 일이었을텐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과거의 자책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마음 먹는 데만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렸던 내가, 마음먹기와 행동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큰 소득이었다. 한 번 해 본 것과 아닌 것은 정말이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였으니 말이다.
나이 마흔이 된 지금,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시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의 수많은 ‘시작’들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나의 삶에 반응하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