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에 축구 훈련을 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내 몸은 몸살과 급체를 반복했다. 그 사이 마음도 게을러져서, 오늘은 몸이 아프지 않은데도 쉬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생겼다. 오늘까지 빠지면 팀의 훈련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거야! 마음을 굳게 먹는 나는 드디어 휴식의 유혹을 견디고 풋살장에 갔다.
풋살장의 필드 위에는 그동안 소복히 쌓인 눈이 절반 가량만 치워진 채 남아 있었다. 심지어 얼음도 얼어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눈이 내린 요즘, 눈을 치우다 치우다 전체를 치우는 일은 이제 포기한 모양이었다. 얼음에 미끄러지진 않는지 살금살금 걸어보며 시험을 해보고 있으니 우리팀의 에이스 영지씨가 오셨다.
"언니, 생각보다 안 미끄러져요."
영지씨의 말에 마음이 좀 놓였다. 우리 팀에서 가장 움직임이 빠르고 파워풀한 영지씨도 안 미끄러졌으니 내가 미끄러질 일은 없겠지.
오랜만에 축구공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마흔이 되어 처음 공을 차보는 내게, 미지의 세계 같았던 이 공. 공을 살살살 차며 드리블을 하고 있으니 오늘 훈련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리라는 각오가 새삼 차올랐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코치님까지 오셔서 몸을 풀고 있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오늘은 나와 영지씨-팀의 만년 후보와 에이스- 단 둘만 출석한 것이다. 아무래도 영지씨보다 열심히 훈련하기는 힘든 것 같으니 즐겁고 재미있게 훈련을 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한 달만에 운동을 하니, 몸풀기부터가 달라졌다. 잔발 뛰기, 엉덩이 차며 뛰기, 무릎 높이 들어올리기, 양쪽 발 아웃사이드&인사이드로 차며 뛰기 같은 동작들이 생겼다. 영지씨의 잔발 속도와 엄청난 차이가 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데, 발의 안쪽을 손으로 치며 뛰는 동작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뛰기는 커녕 아예 손을 닿게 하는 것조차 어려워 어기적댔다. 어떻게 영지씨는 저렇게 빨리 할 수 있지? 역시 운동은 빠지면 안 되는 거야. 영지씨의 몸놀림에 감탄하며 조금이라도 손을 대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코치님이 소리쳤다.
"제이야, 오랑우탄처럼 하면 어떡해? 반댓발을 터치해야지!"
그랬다. 나는 같은 발을 같은 손으로 터치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나의 얼굴은 식을 줄을 몰랐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엄청난 속도로 같은 쪽 손으로 발을 터치하는 동작을 선보여 나는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여야 했다...
패스 훈련도 오늘은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동안은 짝끼리 주고받으며 연습했었는데, 오늘은 중간에 자리를 잡고 양쪽에서 차례로 주는 패스를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며 받는 방식이었다. 코치님의 설명을 듣고 영지씨가 먼저 시작했는데, 빠른 몸놀림으로 어찌나 패스를 잘 받는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다음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한쪽의 패스를 먼저 받고 그 다음 방향을 바꾸어 패스를 받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그런데 이상했다. 왜 패스 훈련을 하는데 이렇게 어지럽지?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서 공을 받을 수가 없었다. 패스 훈련이 아니라 어지러움을 이기는 훈련인 건가? 이 어지러운 것을 영지씨는 어떻게 백번씩이나 한 거지?
나도 모르게 양쪽의 패스를 받기 위해 원을 돌고 있었나 보다. 몇 바퀴를 연속해서 돌다보니 어지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영지씨는 반바퀴를 반복해서 전환하는 형식으로 원을 돌지 않았다 한다.... 코치님은 왜 이런 것도 알려줘야 하냐는 식으로 날 바라보았고, 나는 제자리에 앉아 빵 터지고 말았다. 이런 내가 너무 웃겨 배가 아팠다. 역시 운동은 쉬지 말고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감이 떨어지는 걸 보니 말이다. 하하하하. 그런데 지금까지 코치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한 번에 감을 잡은 적이 있기는 했던 걸까?(다시 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뭐니뭐니해도 오늘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헛다리 드리블 연습이었다. 기존의 드리블에 헛다리를 추가한 동작이었다. 축구 경기 영상으로만 보던 헛다리를 직접 해보다니! 나도 수비수를 속이는 동작을 배우게 되다니! 이렇게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마다 나의 마음은 감격으로 차오른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과는 별개로, 나의 헛다리는 수비수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 혼란에 빠뜨릴 뿐이었다. 발은 자꾸 높게 동동 떴고, 드리블을 할수록 속도가 느려졌다. 코치님은 무조건 계속 반복해서 몸이 기억하도록 해야 진짜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이 기술을 쓸 수 있다고 하셨다. 최대한 발을 땅으로 끌며, 헛다리는 빠르게!
화려한 헛다리 기술을 선보였던 이영표 선수를 기억한다. 손흥민도 헛다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적재적소에 헛다리를 촥촥 쓰는 선수들을 보면 너무나 멋있다. 나도 언젠가는 경기에서 헛다리를 쓰며 수비수를 제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축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오늘 훈련은 몸이 굳을대로 굳어서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는 헛다리 연속이었지만, 헛다리 짚기 기술만은 열심히 연습해서 제대로 헛다리를 짚을 수 있는 날을 꼭 만들고야 말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파이팅을 외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