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는 편이다. 인생의 말년에 맞이하는 죽음을 상상할 때가 있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상상도 하는 편이다. 근데 전자를 두고 농담 삼아하는 말이 있다.
정말 내가 다 늙어서 죽을 때 해보고 싶은 것.
1. 내가 임종하기 전 모두를 웃길 수 있는 농담 한번 던지기
2. 미리 녹화해 둔 나의 마지막 영상을 장례식 때 틀기 (단, 웃겨야 함)
3. 유언 조차도 웃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서는 삶의 끝까지(!) 가야 한다. 이야! 어떻게든 끝까지 가보겠다는 일념은 정말 최고다. 갈 땐 가더라도 나의 스타일을 끝까지 고수해야 프로다. 프로가 별거냐... 어느 영역에서든 끝까지 뭔가를 이루어내야 그게 프로페셔널(Professional) 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개그맨도 아닌데 어떻게든 웃기겠다는 마음가짐은 인정해 주시라! 농담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저보다 조금 더 살아내시면 들을 수 있겠죠?' 다소 발칙한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나의 격정적인 청소년기엔 다 늙어서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없었다. 삶에서 워낙 변수가 많았고 우울했고 어두웠다. 하지만 겉으로는 굉장히 밝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딴 생각할 겨를을 주지 말았어야 할 시기에 나는 '방치되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아니지, 나는 놀 줄 모르는 청소년이었던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을 중학교 1학년 도덕책을 통해 들었다. 정말이지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은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내 마음은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이었고 성난 파도와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 매로 제압당했다. 괜찮다. 그때 맞은 매는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던 네비게이션 같은 것, 지나고 나니 좋은 추억이면 되었다. 그래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매보다는 조금 더 다정히 대해주세요. (요즘은 매가 없지?)
게다가 성적표가 집으로 오는 날이면 나에게는 비상사태가 발령되는 날이었다. 나의 질풍노도가 갑자기 잠잠해지다 못해 심각해지는 상황, 아니지... 나의 성적표로 인하여 나는 잔소리 경계태세에서 사자후 경계태세까지 격상시켰고 대피계획까지 머리속에 그렸으나 피할 수 없었다. 저녁식사는 가족이 모여서 해야했고 나는 그것을 피할 사유가 없었다. 그리고 한번 제대로 혼나는 것보다 날카로웠던 것은 한심하다는 듯한 뉘앙스의 표현이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제대로 찌를 때면 한참을 울고 온갖 나쁜 상상력을 펼친 후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였을 때의 그 허탈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자고나면 내일이 아니라 결국 살아가야할 오늘이었다. 지금에 와서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별반 다를 것 없겠지만 그래도 성적표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나의 청소년 시절의 기억(혹은 추억?)은 이상하리만큼 깊게 박혀있다. 좋은 기억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심각했던 순간이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특히 위에 언급한 성적표가 집으로 왔을 때의 시기, 가끔씩 날아오는 날카로운 말들, 이루고자 했던 자잘자잘한 것들의 실패 등 뭔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차라리 이 세상에 내가 없었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누가 거스를 수 있겠는가.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고 죽을 용기가 없으니 계속 살아갈 용기를 내는 것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용기가 없었음에 나는 감사하며 살아간다. 앞으로도 없어야 할 것이고.
아래에 소개할 <Art of Life>를 고등학생 때 야간자율학습을 하면서 참 많이 들었다. 노래가사까지 출력해서 가사에 집중할 정도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의 느낌은 굉장히 처절했다. 그에 반해 나는 그저 앞에 책을 두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눈은 가사를 따라갈 뿐이었다. 결국 이 곡을 지겹도록 들으면서 나는 죽는 것이 아닌 더 열심히 살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하면 X-Japan은 2008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해에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재결성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Art of Life는 '삶의 예술'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법'이라는 것을.
CD케이스가 파손 된 상태로 선물받아서 표지는 따로 빼서 촬영했다.
80년대 말 인디를 거치고 대형기획사와 손을 잡은 X는 1991년, <Jealousy>를 발표하여 일본에서 상당한 히트를 치며 메탈음반으로써 전무후무한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베이시스트 타이지와 리더 요시키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타이지가 밴드를 탈퇴해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말이 탈퇴지 퇴출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새로운 베이시스트 히스를 영입하여 만든 이 음반은 기존의 팀 이름 X에서 미국 진출을 위해 'X from Japan'으로 잠시동안 변경하였으나 이내 X-Japan이 되었으며 우리가 알고있는 X-Japan이라는 이름은 이 시기(1993)부터 사용하였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다.
3집인 이 음반에는 <Art of Life>라는 음반의 제목과 같은 곡이 딱 1곡 들어있으며 1곡의 길이가 거의 30분이나 되는 대곡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심포닉 메탈'이라는 장르를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곡이다. 그래서 멤버들의 개개인의 악기소리의 배경을 클래식 악기들이 채워주고 있음을 음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녹음하는 것 자체가 순탄치 않았던 음반이다. 타이지 탈퇴 후 들어온 히스는 첫 음반부터 얼마나 난관이겠는가... 그리고 보컬 토시가 이 곡을 녹음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고생을 했는데 이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음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그의 성대는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고 발매 후 성대결절 수술까지 받아야 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 음반은 60만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고 가사에 일본어가 아닌 전부 영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2001년에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라이선스로 발매 되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버전이기도 하다.
북클릿 내부에 있는 사진. 표지 뒷면에는 요시키의 모습이 해골로 나와있는데 내부의 멤버사진은 다행히(?) 멀쩡하게 나왔다 사진 속 왼쪽부터 멤버소개를 간단하게 하자면...
파타 : 1965년 11월 생 / 기타리스트 / 과묵하고 술을 좋아하고 오죽하면 뮤비속에서도 폭음으로 죽는 장면이 나온다.
히데 : 1964년 12월 생 / 기타리스트 / 비주얼 록은 이 사람으로 부터 시작하고 이 사람으로 끝이났다. 세상을 떠나도 아직까지 회자되는 전설적인 아티스트.
요시키 : 1965년 11월 생 / 드럼, 피아노, 작사, 작곡의 대부분을 담당 / 새로운 음반을 낸다는 그의 구라(?)가 언제쯤 진실이 될지는... Art of Life의 후속작을 만들겠다고는 하나 이것도 거짓말 같다.
토시 : 1965년 10월 생 / 보컬 / 아무튼 이 음반을 녹음하면서 상당한 고생을 했다. 라이브를 할 때도 이 곡만큼은 확실히 버거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명품 보컬임은 확실하다.
히스 : 1968년 1월 생 / 베이시스트 / 엑스재팬에서 활동 할 당시 타이지의 후임으로 들어왔으나 타이지 만큼의 임팩트가 없어서 안타까웠으나 그게 그만의 개성이었던 것 같다.
음반을 펼쳤을 때의 모습.
Art of Life의 구성은 총 3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3가지의 파트는 다음과 같다.
1st Movement : 곡의 시작부터 피아노 솔로 전
2nd Movement : 피아노 솔로
3rd Movement : 피아노 솔로 이후의 시작과 곡의 끝까지
여담으로 라디오나 노래방에서 이 곡이 흘러나면 100% '3rd Movement' 파트다. 곡도 짧기 때문에 곡의 전체를 듣기 부담스러워 이 부분만 트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에서 이 곡의 전체를 튼 경우가 딱 한번 있다고 하던데 그 방송을 들었던 사람은 정말 우리나라 라디오 역사의 한 장면에 함께 하신 셈이 되겠다.
29분짜리의 곡, 끊어지는 것 없이 딱 이 곡만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피아노 솔로만 딱 걷어낸 버전. 공식버전은 아니고 누가 편집을 해서 올렸다. 그래도 19분인데 피아노 솔로가 거의 10분을 잡아먹는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난 이 버전을 즐겨듣는다.
X-Japan의 속 이야기를 담은 영화 We Are X에 수록된 Art of Life는 3rd Movement 버전이 수록되었다. 흔히 이 버전을 두고 radio edit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