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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Jun 17. 2023

너네가 없으면 나도 없는 거야.

Def Leppard - Hysteria (1987)

 친구(親舊)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는 뜻인데 아는 사람이라고 다 친구라고 칭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나도 뭐, 살면서 무턱대고 겨우 한번 정도 만났다고 해서 '친구'로 정하진 않는다. 어른들 말씀에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평생 간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었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만났던 놈들의 진한 우정(?)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야겠다.


가끔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을 두고 진한(?) 농담을 던진다. 대충 이런 식이다.

우리 알고 지낸 지 벌써 00년

이러면 대다수가 정감 어린 욕을 한다. 괜찮다. 전부 경상도 사람들이라서 욕이 곧 정(情)이라 생각한다. 이 자식들, 이 글을 빌어서 너희에게 또 고한다. "일단 알고 지낸 지 20년이 다되어 간다. 캬캬"




 태초에 만남이 있었다. 나의 중학교 친구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은 각각의 카카오톡 방이 있는데 방 이름은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면서 정해졌는데 중학교 친구들은 당시 학교가 아닌 같은 학원을 다녔던 녀석들이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학원의 이름(왕수학학원)을 따서 만들었고 고등학교 친구들의 모임의 이름은 놀랍게도 [병신들]이다. 10대 시절에 만난 이들이기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똑같이 바보 같은 천진난만함은 기본이고 서로를 위해 거침없는 말을 내뱉어도 선을 넘지 않으며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여도 타격을 받지 않음과 서로 자기 할 말만 한다던가 아니면 몇 달간 톡방이 조용하면 그냥 내가 시작을 알린다는 공통점이 있는 곳이다.


톡방이 조용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내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바쁘다. 20대에는 거의 주기적으로 바글바글 했었는데 지금은 진짜 조용해졌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성향을 제대로 드러낸다. 활기를 위해, 친구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게 드러내고야 만다. 그만큼 나에게 그 두 개의 방은 소중함 그 자체다.


한 번은 중학교 톡방에서 각자의 삶에 지쳤는지 잠시만 톡방을 떠나겠다는 말을 하고 나가고야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개인적으로 상황을 물어보고 다시 초대를 하기 전까지 그 방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기다리는 것은 참 잘한다. 가끔은 나를 두고 바보 같다는 말을 해도 나는 괜찮다. 밖에서 오래 있다가 돌아와도 똑같은 곳이 곧 마음이 쉴 수 있는 곳 아니겠는가?




 이 놈들에게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공통적으로 하나 있다. 몇 년 전, 아주 오래간만에 여름휴가를 계획하여 경기 북부에서 경상북도로 내려가던 첫날 월요일, 갑작스럽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큰 일정은 없었지만 왕수학학원 친구들과 병신들의 모임을 부득이하게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일정에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남겼고 장례식 위치만 간단히 알려줬는데 그날 저녁 이 녀석들이 10분 간격으로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도착했다. 


제대로 된 모임은 할 수 없었지만 나를 위해서 그렇게 와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뭐 하러 왔노?(와줘서 고맙다.)"

"이렇게라도 니 보러 와야지."


그날을 정말 잊을 수 없다. 분명히 다른 날짜에 만나기로 한 녀석들이 같은 날 그렇게 모였다는 것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지난 2023년 2월에, 코로나19도 지나가고 아주 오랜만에 두 팀을 또 만날 수 있었다. 계획을 짜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왕수학학원] 친구들은 경산에서 만나자고 해놓고 1시간도 넘게 걸리는, 차가 무지하게 막히는 대구의 한 스타벅스에서 모두 만났고 경산은 커녕 팔공산까지 가서 닭백숙을 먹었다.(왜???) 그리고 다음날에는 [병신들]에서 유일하게 카페를 운영하는 놈의 카페에서 조우를 하였고 오랜 시간 사장님을 갈구는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다. 정말 행복한 것은 이 들을 만날 때는 2004~2009년으로 되돌아간다. 그 기억 속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너희들을 만났던 학원에서, 학교에서 겪어왔던 지난 좋은 추억들이 내 기억 속에 오랜 시간 묵혀놓은 것을 함께 풀어놓을 때 정말 행복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만 행복할까? 아니, 나와 함께 모인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정말로!


이 글을 빌어서... 너희들 중 누가 먼저 결혼을 하던 그 결혼식의 축가는 내가 부를 것이다! 빨리 준비된 녀석은 가라. 나는 모르겠다.




일본에서 발매한 데프 레파드의 4집.

 데프 레파드(Def Leppard)는 놀랍게도 1977년에 결성되어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뛰는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을 대표하는 밴드이다. 데프 레파드가 현재까지도 오랜 시간 함께 있는 이유는 다른 밴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끈끈한 우정도 한 몫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이 바로 데프 레파드의 4집 <Hysteria> 되시겠다. 1983년 1월에 발매한 이들의 3집 <Pyromania>는 당시 빌보드 차트 정상을 지키고 있던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의 힘을 누르지는 못했지만 사실상 그 음반을 이길 수 있는 아티스트는 없었기에 마이클 잭슨을 제외하면 사실상 1위인 셈이었다.


3집에서 성공의 맛을 본 데프 레파드는 3집이 1983년에 나오고 4집을 발표하는 데 까지 4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보통 밴드가 빠르면 1년 미만 늦어도 2~3년에 음반을 발표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1984년에 있었던 드러머 릭 앨런의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릭 앨런은 왼팔을 절단하게 된다.


이 사고로 밴드를 떠나려 했던 릭 앨런을 붙잡은 것은 모든 멤버들이었다. 오죽하면 사고 이후 드러머 교체설이 떠돌기도 했는데 데프 레파드 측은 "당신이라면 식구가 사고로 팔을 잃었다고 집에서 내쫓겠는가" 라며 교체설을 일축시키기도 했다. 이후 릭 앨런은 끊임없는 재활과 연습 그리고 릭 앨런만의 드럼 셋을 만들어 당당히 복귀를 알린다.



사 실 이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발매한 라이선스 버전은 중고로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일본에서 발매한 것을 구입한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Pour some sugar on me>가 한국 라이선스 음반에는 없기 때문이다. 


릭 엘런의 보완된 드러밍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멤버가 코러스에 참여하였고 팝 메탈 색채가 강한 음반이지만 엄연히 헤비메탈 음반이다. 하지만 3집까지 유지되었던 밴드의 방향성이 4집에서는 완전히 바뀌었으나 데프 레파드의 진한 우정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하고 밴드의 성공을 증명해 냈다는 것으로 완벽히 정리가 되는 아주 훌륭한 음반이라 생각한다.


<트랙리스트> (★ 표시를 굳이 따로 표시하지 않겠습니다. 아주 훌륭한 음반입니다! 클릭하면 음악으로 연결됩니다.)


Side A

1. WOMEN

2. ROCKET

3. ANIMAL

4. LOVE BITES

5. POUR SOME SUGAR ON ME

6. ARMAGEDDON IT


Side B

1. GODS OF WAR

2. DON'T SHOOT SHOTGUN

3. RUN RIOT

4. HYSTERIA

5. EXCITABLE

6. LOVE AND AFFECTION



 데프 레파드는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들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릭 엘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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