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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Jul 01. 2024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을걸?

김광석 - 나무 (1992)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여 얼른 그런 생각을 멈추곤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갔다면 우리나라의 어느 곳은 내 땅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운전을 하다가 방향 지시등의 신호도 없이 들어오는 차는 손가락으로 튕겨냈을 것이며 우리나라를 넘볼 수 없도록 부국강병을 이끌어 내거나 더 나아가서 광개토대왕의 정신을 이어받는 북진정책을... 이것은 조금 위험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고, 아무튼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좋아했던 밴드생활은 공연 한두 번 하고 멤버들이 나가기 일쑤였고 어린 시절 용기를 내어 고백했던 사람에게 대차게 거절당한 것도 나의 예상을 벗어난 것들이었다. 교회를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저는 시험 직전에 기도하고 시험 쳤는데 만점 받았어요."라는 식의 간증은 어찌 되었든 그 사람은 공부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영양가 없는 영적인 효험이 내게는 통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조금 반대로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으니 직장상사에게 잔소리를 듣는다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터져서 혼이 나기 직전이면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그래, 혼나자 혼나자 그러다가 적응되면 다음에 또 혼나도 돼" 벌써부터 정신은 이미 승리했다. 매번 질 거 같은데 정신이라도 이기면 뭐 어때?


설령 직장상사에게 혼나더라도 기죽지 않기로 했다. 그래, 분명 우리의 아버지도 이랬고 우리의 어머니도 이래왔어. 분명 당시의 직장상사에게 혼난 적이 왜 없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순간에도 누군가는 혼내고 누군가는 혼나고 있다는 생각에 혼나는 사람들이 있건 없건 그 부류의 사람들을 동정하게 되었다. 괜찮다 괜히 쭈그러들 이유도 없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많아졌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 더 늘었다. 내가 같은 옷을 입고 일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처음 하는 것 투성이었다. 누군가에게 제일 간단한 일이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빨리 인정했다.


'나는 이등병이나 다름없다.'


이등병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모든 게 낯설고 적어도 알아야 할 것들은 숙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리고 모르는 것은 빨리 질문해서 답을 찾아야 다음에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 조금이나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대학생 시절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다 화장실을 가게 되면 소변기 앞에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사람은 5분간 바보가 되고,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바보가 된다.

누가 이 말을 생전에 남겼는지 모르지만 난 5분만 바보가 되기로 했다. 여태까지 쌓아온 10년의 경력은 없다는 셈 치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사실 전부 모르는 것들이었기에 도움을 구했어야 했다. 물론 처리하는데 굉장한 시간을 쏟아내서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후배를 집에 데려다주는 일이 가끔가다 있다. 그러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선배님은 혹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으셨습니까?"


왜 없겠나. 10년을 같은 일을 했는데 원하는 상황이 그려지지 않을 때 도망치고 싶었고 원하는 상황이 어쩌다 그려지면 그 기쁨에 취해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고 좋은 일이 생겨도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런 마음은 누구나 올라오지 않을까? 참고 견디는 것뿐.


대신 진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 좌절하지 않는 것뿐이다. 야구도 10타석 중 3번 치면 잘하는 것인데 인생도 그러지 않을까? 게다가 야구는 투수가 아무리 잘해도 이기지 못하는 것, 내가 삶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의 투수 선동열의 전성기 급 방어율을 자랑하는 실력의 업무처리를 가져봤자 누군가의 홈런 한방에 나가떨어질 수 있는 것이 삶이 아니던가.


아직은 그만둘 때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세웠으니까. 내가 3대(파워리프팅의 세 가지 종목인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쾃 줄여 부르는 말) 600kg를 들면 내가 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근접하지도 않으니 계속 일하며 살라는 의미로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갈길이 참 멀고도 멀다. 원하는 대로 되고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일까?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을 거니까 감사하기로 하자.


감사하기로 하자

감사하자.

감사.






 김광석의 음반을 전부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1~4집을 턴테이블에 올려 가만히 듣다 보면 제일 손이 안 갔던 음반이 3집이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나마 3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뿐이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소개하는 곡은 김윤성 작사, 한동헌 작곡의 <나무>다.


민중가요적인 성향이 매우 짙은 <나무>는 김광석의 혼이 제대로 담겨있음을 내가 느낀 것도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노랫말을 들으면서도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음악이라는 이 기록,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소


이 가사에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무서워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내가 갓 심어진 나무라 가정한다면 분명 세상은 무서울 수 있겠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고 천천히 우직하게 자라가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후반부의 가사처럼 무성한 가지로 그늘을 펼만한 자리가 될 수 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1992년 3월의 라이브, 3집이 이 시기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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