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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Mar 08. 2022

내 전세자금대출 한도는...

“하느님. 이번 전세자금대출, 딱 한 번만 제게 순탄한 길을 내어주신다면, 앞으로 효도도 많이 하고 착한 척 많이 하고 살겠습니다. 근데, 하느님이 맞나요. 하나님이 맞나요? 아무튼 두 분 중 아무나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지만, 참 비겁하게도 급하고 간절할 때만 내 소원을 들어달라는 기도를 하곤 했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은 벌써 몇 번은 반복됐다. 대학, 취업까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만 기도했지만, 나중에는 진입장벽이 낮아져 토익 점수나 소개팅을 할 때도 간절함을 기도에 담았다. 기도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중간에 발음이 틀리면 안 되고, 한 호흡에 끝내야 하며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야 하고, 두 손은 깍지를 껴야 한다. 기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의라고 생각하면서. 

 얼마만의 기도인지 가물가물해하면서,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은행에 들어섰다. 전세자금대출과 담판을 짓기 위해 당당한 모습의 입장과 더 당당한 모습의 퇴장을 잠깐이나마 그려도 보았다. 하지만, 은행에 들어가자마자 돈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의 자화상이 출입문 유리창에 비쳤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쓸모없는 시간이 은행에서 대기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리 책을 챙기기도 했다. 양손에는 미리 준비한 서류들과 책을 들고 전세자금대출 때문에 왔다고 말했고, 다행히 일반 상담업무만 대기 인원이 많았지 대출과 관련된 업무 쪽에는 대기인원이 두 명 밖에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건 내 신용도를 기본으로 종합적인 경제능력에 따라 대출한도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출상품은 한도 1억, 금리 1.2%인 ‘중소기업청년전세자금대출’로 정한 상황에서 내 절망스러운 경제 상태에 따라 터무니없는 금액을 대출받는다면 일이 꼬일 대로 꼬여버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1억을 받아도 다음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한도가 1억이어도 7천 받으면 많이 받은 거다.’, ‘8천 이상은 꿈도 꾸지 말라.’ 등 암울한 글들도 많았기 때문에, 은행에서 혼자 앉아있는 내 자세는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었다.  

 “43번 손님.”

 내 대기 순번표가 호명되자 놀란 듯이 벌떡 일어나서 창구로 향했다. 정성스레 가져온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네. 전세자금대출 때문에 왔는데요. 중소기업전세자금대출로 알아보고 왔고, 서류도 일단 다 준비해서 왔어요. 한 번 검토해주시겠어요?” 

 대출상품에 대한 설명들을 귀찮아할 것 같아서 곧바로 본론 먼저 얘기했다. 

 “아. 네. 서류 한 번 줘보시겠어요?”

 그때부터는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내 앞에 있던 은행원은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는데, 두리번거리다 보니 대출 상담 쪽에 있는 은행원이 전부 내 나이 또래였다. 생김새는 누가 봐도 엘리트의 모습과 게임을 잘할 것 같은 모습이 공존했는데, 아무래도 엘리트의 모습이 더 가깝겠지. 내 세대에서 금융권 취업이 어렵다는 기사는 몇 번 본 적 있었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나는 가만히 있기가 살짝 지루해졌지만, 내 앞의 은행원은 은행 전체를 돌아다니며 내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지점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했고, 서류를 복사하기도 했고. 하긴, 1억 빌려주는 게 어디 간단히 처리할 일은 아니니까. 조금의 여유가 생겼는지, 내게 말을 걸기도 했다. 딱 봐도 그 은행원의 성격에는 그런 말 건네는 스타일이 아닌데, 가만히 있으면 더 어색할 것 같았나 보다.

 “와. 이쪽은 취업 준비도 엄청 오래 하고, 뽑는 인원도 적다는데 대단하시네요.”

 ‘잉? 나한테 그런 말을?’ 금융권에 취업한 사람이 나를 약 올리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표정은 겸손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여기 금융권보다는 수월할 걸요? 저는 대리님이 훨씬 더 대단해 보이시는데요?” 초면인 남자 두 명이 서로를 띄워주는 아주 훈훈한 대화를 이어갔다. 

 “하긴. 저희 때는 안 힘든 쪽이 없었죠? 서류 준비 잘해오셨네요. 보통 한, 두 개는 준비 못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다행이네요. 뭐 문제 되거나 그런 부분은 없을까요?”
  “네. 문제 될 건 없는데, 한도가 어떻게 나올지를 한 번 봐야 될 것 같아요. 이게 저희도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

 그래도 일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5천 이상은 나올 것이고, 마이너스 통장도 겨우 뚫은 판국에 5천이라도 감지덕지다. 남은 1억 이상의 돈은 어디서 구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항상 그랬듯이 그런 문제는 닥치고 난 뒤에야 해결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오늘은 일단 기본 심사는 완료했습니다. 그다음에 집주인 확인 과정이라든지 더 심사할 게 있어서 아마 짧으면 2주, 길면 3주 안에 마무리되는데, 아마 한도 확정은 그전에 제가 연락드릴 겁니다.”

 그렇게 그날 전세자금대출 신청을 끝내고는 마이너스 통장 개설을 기다리던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일주일 정도 흘렀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이때 직감적으로 ‘은행원일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은행원이기를 바라기도 했을 수도. 

 “한도 나왔어요. 8천800만 원이네요.”

 ‘제가요? 저 모아둔 돈도 없고, 주거래은행도 아닌데 많이 나왔네요? 힘 좀 써주신 거예요?’ 등등 신이 나서 온갖 주책들을 떨고 싶었지만, 그래도 점잖은 척 정중히 감사인사만 전했다. 사실 은행에서는 호구 한 명 물은 거라 감사인사는 그쪽에서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퇴근 후에는 남은 1억을 구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사실 답이 없는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출 금리가 30% 이상인 이상한 대부업계의 손을 빌리면 안 된다는 걸 많은 드라마가 알려줬다. 그랬다가는 앞으로 매번 숨어 살면서 한 번씩 두들겨 맞는 삶이 될 것이다. 

 그렇게 혼자 맥주를 다 비웠을 때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 나는 언제 철드냐....’ 좌절 섞인 원망을 스스로에게 내뱉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결혼 준비 잘 돼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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