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에 있어 그래도 무난하게 모든 금전적 문제를 해결했다. 속속 들여다보면 내 돈은 하나도 없으니, 그리 떳떳하지 않은 과정이지만. 사실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전세금 마련에 대한 몫이 압도적으로 중요했기에 이제 큰 산은 넘었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누구보다 역전패는 싫어했기 때문에 안심하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면 스드메는 예약 다 했어요?" 가끔은 나보다 동기들이 내 결혼에 더 관심 있는 듯하다.
"스듬애? 그게 뭐야?"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잠깐이나마 스쳐 지나갔던 말이라면 들은 척이라도 했을 텐데.
"아. 환장하겠네 진짜." 특히 여자 동기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전이랑 스드메 준비해봐라. 그때부터 얼마나 싸우는지 아냐?”
결혼한 사람들에게 이런 너스레를 들을 때마다 별로 개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거야 너희들의 소통 방식이 잘못된 거고, 우리 커플은 달라’라는 생각으로 맞받아치기도 했지만, 정작 내게도 그런 시간들이 다가오니 염려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 또한 갈등에 부딪히기에 앞서 할 수 있는 준비는 되는대로 예습, 복습했다.
‘최대한 마음 넓게 가지기’, ‘무조건 맞춰주기’, ‘짜증 내지 않기’ 등등.
다행인 건 내 여자친구가 스. 드. 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나 가전, 나머지 준비과정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는 걸 즐겼기 때문에 내 결정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었다. 즐겼다기보다는 내 결정과 선택들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의 그런 안목들이 형편없는 것도 사실이기에.
본격적으로 스드메를 정해야 한다고 얘기를 나눈 뒤 여자친구는 10일 만에 전부 예약까지 마치는 엄청난 추진력을 보여줬다. 이 사람에게 이 정도로 추진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그만큼 여자의 인생에서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이 매끄럽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계약했던 예식장은 드레스를 패키지로 포함했는데, 그곳의 드레스 중에는 여자친구가 맘에 들어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손익을 따져보고는 계약했던 예식장을 취소하고 다른 예식장을 알아봐야 했다. 다행인 건 다른 예식장에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로 한 자리가 남아 있어 이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가전제품을 고르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여자친구의 입장도 들어봐야겠지만. 에어컨은 본가에 스탠드형 남은 게 하나 있어 가져오면 됐고, 안방에 설치할 벽걸이형 에어컨도 친구가 결혼 선물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건 TV와 스타일러, 냉장고, 세탁기 정도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전자제품의 브랜드는 2강 체제가 독주하고 있는데, 나는 제조업의 뼈대를 근거로 어느 한 특정 브랜드를 고집했다. 이 부분도 다행히 여자친구와 생각이 같았다.
생각해보니 가구 선정에는 발걸음을 꽤나 투자했다. 집 주위에 있는 가구 전문점 3곳을 돌아다녔고, 2시간 거리에 있는 가구 전문점까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중간마다 인터넷 가격비교도 놓치면 안 되고,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침대 선정에만 1주일이 걸리기도 했다. 오래 쓸 물건들이니 그 정도 열정을 보여야 하는 것도 당연한 거지만, 원래 인간이 피곤하면 당연한 것도 짜증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살다보면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것들이, 내게는 예민한 문제인 것들이 있다. 굳이 꼽자면 대표적으로 '사람의 양면성'이 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또 깨달았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품성을 가지고 개인 사업이나 영업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고객들의 편의와 행복을 위한다는 초심으로 접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 2년 흐를수록 그 초심을 잃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기 이익만 좇게 되는 아주 불량한 마인드가 자리 잡게 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런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니면 내가 인복이 없어 내 주위에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특히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많이 볼 수 있는데, 계약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태도가 급격히 달라지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부동산, 전자제품, 예식장 등 계약 전까지만 하더라도 온갖 가식스러운 웃음들을 보이며 두 손을 비비던 사람들이었지만, 다 뜯어먹었다고 판단할 때 180도 바뀐 표정과 말투들을 보면 이상한 배신감 같은 느낌이 전달된다. 결국 끝이 찜찜해지는 것이다.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지.’ 마치 잠시나마 정을 나눴던 사람처럼. 내가 마음이 여린 건지도.
나조차도 매너리즘에 쉽게 빠지니 일로 치이는 사회생활에선 그런 패턴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영원한 친절과 베풂을 기대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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