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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17. 2024

몹시 짜증 나는 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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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백일이던 즈음은 매서운 찬 바람이 뼛속까지 얼리는 듯한 1월이었다. 첫째 아이와 다르게 둘째 아이의 육아는 순탄치 않았다. 내려놓기만 하면 흔히 말하는 등센서가 작동하여 울어재끼기 일쑤였다. 너무 자지러지게 많이 울어서 수유하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안고 있어야 하는 게 일상이었다.


요즘 육아용품이 잘 나와서 망정이지, 이 현대판 포대기는 내 가슴에 언제나 아이와 함께 양쪽 사선으로 붙어있었다. 아이의 무게가 점차 늘어갈수록 내 양 어깨에 실리는 무게는 이상하게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워졌다. 한번 짊어지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책임감의 무게로 느껴졌다. 2리터짜리 삼다수 물병 한 개 반으로 시작해서 무려 세 개에 해당하는 무게. 6kg에 육박하는 아이를 한번 안을 때마다 대여섯 시간씩 꼬박 안고 있어야 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종일 안고 있어야 하다 보니 역시나 내 몸뚱이는 성할 날이 없었다.



수유하는 시간이라도 잠깐 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젠장, 나는 출산을 앞두고 제일 걱정되고 두려웠던 것이 모유수유였다. 이미 첫째 아이를 통해 겪어봤던 그야말로 진정한 육아 전쟁이랄까. 경험 이전에 내가 상상했던 모유수유는 아기도 편안한 얼굴로 엄마 젖을 음미하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미소 지은 엄마의 모습도 평화 그 자체였다. 내가 가슴을 내밀면 그냥 아이가 알아서 젖을 물고 알아서 먹게 되는 그런 간단하고 쉬운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유방의 특성과 기능을 직접 임신과 출산을 겪어보기 전까진 알 턱이 없었다. 아이의 입구조나 혀의 기능에 따라서 모유수유의 성공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엄마의 유방특성과 유두의 생김새였다. 유두의 모양이 아기가 빨기 쉽지 않다면 모유수유의 시작 자체가 무척 어려워진다. 젖물리기가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는 조리원 신생아실 옆에 붙어있는 모유수유실에 입성해야만, 그때 돼서야 뼈저리게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임신도 처음이던 내가 출산을 막 겪고 난 뒤에 평화로이 회복하겠다고 부푼 희망을 가지고 찾아간 조리원은 사실상 휴식과 쉼을 선물 주지 않았다. 그저 몰랐던 미지의 세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모유수유와의 전쟁 포털이 새로 열렸다. 다행히 내 유두는 아기가 빨기에 적정했고 수월했다. 하지만 유방의 특성이 아주 까다롭고 문제가 많았다. 일명 '치밀 유방'. 즉, 유방의 크기에 비해 조직이 몹시 치밀하여 유즙을 만들어내는 유선은 많은데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은 것. 유선조직이 복잡하고 가늘어 모유가 잘 나오기가 힘든 구조였다.


한국 여성 10명 중에 4명에서 6명이 치밀 유방을 가졌다고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나였다. 심지어 나는 만들어내는 젖양이 너무 많은 데다 사출까지 심했다. 아주 가느다란 1차선 비포장 시골길에 100대 이상의 차가 서둘러 동시에 빠져나가려고 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쏟아지는 젖 때문에 아기가 꿀꺽꿀꺽 먹을 때마다 사레에 들려 컥컥 거리는 일이 일쑤였고, 짧은 시간 내 한꺼번에 먹어지는 양이 많았다. 먹어야 살아지는 아기와 먹여야 살아지는 나는 하루에 열 번에서 스무 번까지 신체적, 정신적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보통 왼쪽과 오른쪽 번갈아 양쪽 유방을 통해 각각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수유시간이 나는 단 5분 컷으로 그쳤다. 생성되는 양에 비해 배출되는 양이 적다 보니 나의 유선조직들은 언제나 전쟁통이었다. 젖양이 줄어들도록, 냉장고에 차갑게 썰어둔 넓적한 양배추잎을 가져다 가운데 유두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만 뚫어놓고 유방 위에 얹어두는, '양배추 요법'을 항시 실행해야 했다. 통증이 절대 올 수 없도록, 한번 겪으면 정말 쓰러질 만큼 고통스럽다는 유선염이 오지 않도록 꽁꽁 얼려둔 아이스팩도 수시로 수유브라 사이에 끼워 갈아주어야 했다.


그러나 한번 유즙 생성과 배출에 체증이 생겨버리면 바로 유선이 막혀버렸다. 이내 유방은 돌처럼 굳어 뼈를 만지듯 딱딱해지고 몹시도 아린 통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일명 젖몸살이었다. 그럴 때 재빠르게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아기가 열심히 잘 빨아주면, 신기한 마법처럼 유방이 다시 말랑말랑하게 풀어졌다. 그러나 이미 한번 유선이 막혀 신선한 모유가 생성되지 않고 어디선가 고여있던 모유가 나오게 되면, 아기는 귀신같이 재빨리 알아차리고 맛이 없다며 젖을 빨아주지 않았다.



조리원에서도 집에 복귀해서도 이런 현상은 시시때때로 반복됐다. 그래서 유방에 뜨끈뜨끈 열이 올라 염증이 생기거나 통증이 심해 너무 아플 때면, 일명 '오케타니'라고 불리는 유방 전문 마사지를 받아서 그 울혈들을 손으로 일일이 풀어주고 짜주어야만 했다. (국내에서는 '아이통곡'이란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내 유방 특성이 이러하다 보니 아기가 짧은 시간 내에 모유를 너무 많이 먹게 됐나. 특히 둘째 아이는 뱃구레보다 너무 많은 양이 들어가서 그런지 분수토가 몹시 잦았다. 먹이면 토하고, 먹이면 토하기를 반복했다. 수유를 마치고 나면 항상 한쪽 어깨 위에 아기를 살포시 올리고 등을 쓸어내려주어 소화를 도와주고 트림을 시켜주어야 했다. 그런데 둘째는 조금 역류되어 나오는 정도가 아니었다. 언제나 내 어깨와 등, 그리고 바닥에 소화되다만 덩어리 진 모유 찌꺼기가 섞인 토설물이 쏟아졌다. 그것은 상한 우유와 꼭 닮아있었다.


아무리 생명력 넘치는 사랑스러운 아기일지라도 그 지독한 냄새까지 좋은 향기로 바꿔주는 마법을 부리진 못했다. 악취에 못 이겨 수유할 때마다 하루에 열댓 번도 넘게 아기 옷을 갈아입혀야만 했고, 내 옷 갈아입기도 수시로 반복해야 했다. 우리 집에선 빨래통이 비어있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몸을 사랑하래도, 나의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을 꼭 닮은 유방이 몹시 짜증 났다. 인생에서 벌써 두 번째 유방과 사투를 벌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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