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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Aug 14. 2024

배알이 꼬인다는 것

25

남편과 부둥켜안고 다시 한번 잘 살아보자며 눈물을 흘린 지 고작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배알이 꼬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체감할 수 있는 일이 또 생겼다. 남편이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하더니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술을 진탕 마시고 늦게 들어온 것이다.



‘애들 둘 다 한 시간째 울고 있어요.’


‘언제 오냐고요? 애들 계속 우는데... 저 정말 속에서 욕이 나와요.’


‘왜 일부러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전화는 받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왜 전화를 안 받아요? 회식인데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진짜 이해 불가네요... 그냥 술 쭉 마시고 아예 집에 들어오지 마세요.’


‘......????!!!’


‘야, 너 저번 회식 때도 그렇게 하더니 지금도 똑같이 또 그러니? 회사 사람들이랑 살아 그럼!! 잘해보자고 얘기한 지 며칠이 지났다고. 장소가 어딘지 말도 없이 그냥 나가서는, 9시면 집에 도착한다며.’


‘전화 불통도 한두 번이지, 심각하다. 넌 진짜 구제불능이니? 어제 진짜 개고생 해서 아침부터 몸 부서질 것 같다고 힘들다고 얘기했는데 내 말을 헛걸로 들었니? 네가 이딴 식으로 하는데 내가 너랑 왜 살아. 안 살아!!!!!!!!!’



나는 평소에 전화나 문자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오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이들이 너무 울어서 기다리다 도와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연락을 했을 뿐이었다. 나 혼자 양쪽에서 울어대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네, 이제 갈게요’라는 문자가 드디어 내 휴대폰 알림 화면에 떴다. 그리고도 한참 뒤, 세 시간도 더 지나서야 남편이 집에 왔다. 아니, 엄연히 따지면 남편이 들어온 게 아니라, 창문 멀리서 ‘우웩’ 하는 혐오스러운 토 소리와 마구잡이로 쌍욕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겨우 잠들었다. 나는 화가 머리털 끝까지 치솟아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가뜩이나 고요한 동네의 새벽에, 사부작거리는 나뭇잎 소리마저도 귓가에 맴도는 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자 나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소리를 따라 잠옷 바람으로 집 밖으로 나섰다.



남의 집 담벼락 앞에 붙은 남편과 그 등을 두드리는 다른 동료 한 명. 욕소리는 그 동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고, 토소리는 남편의 입에서 쏟아지는 것이었다. 소리의 위치와 존재를 눈으로 명확히 알아차리자마자 나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에 털이 섰다. 소름 끼치게 싫은 혐오감이었다.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며 내 인생에 술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이따금 특별한 기념일이나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마시는 와인 한 잔이나 맥주 또는 막걸리 몇 모금으로도 충분히 기분을 내고 그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술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술을 마셔도 스스로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술 취향을 존중한다. 다만, 정신줄을 놓고 개차반이 되는 사람의 상태를 혐오할 뿐이다.



어릴 적 나의 아빠는 매일 같이 소주 한 병을 반주로 삼고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때리거나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엄마는 입에 술도 못 대던 가녀린 여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를 만나 힘들고 괴로운 삶에 찌들면서 이제는 와인 한 병을 다 털어 넣는 무서운 여자가 되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우면 술에 정신줄을 놓고 입에 담지 못할 거친 욕을 어떠한 필터링 없이 내뱉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난 뒤 산후조리를 도와주겠다고 내려왔던 엄마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모습은 절대 나에게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나는 15살에 일찍이 술을 접했다. 그 나이, 내가 속한 세상에서 내가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 찐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어울리던 친구들과 호기심에 마트에서 어른 흉내를 내며 심장이 터질 듯한 쾌감을 느끼며 사 왔던 소주 한 병. 그 소주를 까서 아무 안주 없이 꿀꺽꿀꺽 입에 털어 넣으며 이미 삶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때 나는 이미 나의 추잡스러운 주사를 발견했다. 술에 취하니 구역질하며 종일 오열하며 울어댔고, 몸을 가눌 수 없이 여기저기 부딪히고 넘어졌다. 더러운 화장실 변기에도 부딪혔다. 필름이 끊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른 나이에 경험했고, 나의 주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소주를 경멸해 왔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마음이 힘들던 시절,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깡소주 하나를 입에 털어 넣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죽어야지 생각했던 스무 살 이후로는 소주를 입에 댄 적이 없다. 사실 그 죽고 싶을 만큼 마음이 힘들던 시절은 기껏해야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때였다는 게 지금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나와, 나의 부모를, 나의 가족을 혐오할 만큼 싫어했던 술이기 때문에, 절대 내 남편에게서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아이들의 아빠의 모습에서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하필 더 창피하게 남의 집 담벼락에서 목격하다니. 남편에게서 일말의 정나미가 싹 다 떨어졌다. 품위라고는 단 1그램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를 돌아 조용히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의 가방과 옷가지를 싸서 문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대에 누웠다.

문 밖에서 ‘삐삐비빅 띡띡’, 번호가 틀려서 생기는 경보음이 계속해서 들렸다. 그 소리에 아이들이 깰 것 같아서 솟구치는 짜증과 함께 현관문을 확 열어젖혔다. 소주 냄새로 온몸이 뒤덮인 채 고주망태가 되어 몸을 아예 가누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하, 지랄도.’

나는 나에게 얼마 남지 않은 품위를 더 이상 이 남자 때문에 잃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방문을 닫았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린 남편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대답만 내놓을 뿐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남편과의 관계와 그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있었다면 이렇게 행동했을까. 내가 술에 고주망태가 되고 연락 두절이 되는 상황을 얼마나 경멸하고 싫어하는지 이미 이전 회식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남편이 이것보다는 더 나은 행동과 선택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었다.


어느 책에서 말하길, 신뢰는 말로 쌓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쌓는 것이라고 했다. 사소한 행동과 약속이 모여 신뢰를 만든다고. 그게 아이와의 관계에서든, 남편과의 관계에서든, 누구와의 관계에서든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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