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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Aug 11. 2024

말속의 칼

24

많은 사람들이 내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행복하고 즐거운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나는 어르신들이 종종 말하는 '화병'이 무엇인지 실감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육퇴 후에 찾아오는 육체적 정신적 피곤함은 남편과 진지한 대화를 하거나 부부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지쳐 쉬기에 바빴고, 무엇보다 앉아서 진지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피로가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대화하다가 싸울 바에야, 손에 쥔 휴대폰을 통해 나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또는 우리는 대화 대신 단절을 선택했다.



배출되지 않고 켜켜이 쌓인 무수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작은 일에도 지뢰처럼 터졌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관계에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마음 수련을 오래 해왔으면 뭐 할까 회의감마저 들었다. 마치 바닥에 온통 지뢰로 깔려있는 밭 위에 그럴싸한 꽃을 잔뜩 심어 놓고, 그 위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더는 참고 지나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좋지 않은 부부 관계의 피해자는 아이들이었고, 그런 환경을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부모의 부정적인 영향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내가 그 피해자였기 때문에, 절대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경험을 고스란히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해결이 필요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와! 제주다!!' 하며 들떴지만, 금세 일상의 풍경에 적응해 버렸다. 아무리 제주여도 결국엔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환경을 바꾸고 감정을 환기시킬 필요가 절실했다. 마침 펜션에서 협찬 제안이 들어왔고, 1박 2일 동안 제주 서쪽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감정을 풀고, 해결책을 찾기로 결심했다. 펜션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야외 자쿠지가 있어서 모처럼 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남편에게 큰 용기를 내어 와인 한 잔을 하자고 했다. 아이들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가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우리가 부부라는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육아로 얻는 행복과 보람이 컸기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를 통해 내 존재의 이유를 명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육아 때문에', '출산 이후부터', '남편 때문에'라는 핑계를 댔던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내 생각과 내 마음 안에 있었는데, 나는 여태 그래왔듯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있었다.  



"이미 시간이 1년도 넘었지만, 그때 정말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수영장에서 울고 나서야 그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알았어요. 몰랐죠? 물속에서 울었어요, 나. 그것도 엉엉."

"내가 그 이후에 사과했잖아."

"맞아요, 편지도 쓰고 했지만, 그 편지가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그 상처에는 아무 영향도 없었어요."

"여보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낸 거죠. 하지만 알잖아요. 우리 관계가 이미 엉망이라는 걸."

"맞아."

"나는 우리가 쇼윈도 부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한 집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의지하거나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잖아요."

"응."

"우리 관계에서 단절이 너무 명확해요. 스킨십 없이 산 지 1년 반이 넘었어요. 둘째 임신 때 이후로 서로 몸에 손끝도 안 갔다 대는데 이게 무슨 부부예요? 문제가 심각해요. 우리가 심각한 상태라는 걸 알아야 해요. 계속 같이 살 거면 해결해야 해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때는 임신했었으니까 그렇지."

"지금은요?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힘드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나도 우울한 것 같아. 우울증인 것 같아."

"아...?"

"그때 여보가 나한테 했던 말이 잊히지가 않아. 그 말 때문에 내 마음에 큰 뭔가가 생겼어."


남편이 눈물을 흘렸다. 그도 나와의 관계에서 마음이 엇나간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내가 힘들어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 남편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입덧과 출혈로 3개월 가까이 침대에서 시체처럼 누워 지내던 시절, 나는 힘들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한 문장으로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전가시켰다.

'왜 둘째를 갖게 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왜!!!'



나는 그 말을 통해 나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받고 싶었지만, 그 말이 남편에게 칼이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은 내가 원치 않은 둘째를 자기 탓으로 돌린 것 같아 정이 뚝 떨어졌다고 했다. 둘이 함께 원해서 가진 둘째인데, 내가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는 것이 너무 큰 상처였다고 했다. 입덧할 때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변명해도, 이미 그 말은 남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지 오래였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그 말은 남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우리는 그 상처를 극복하려 눈물로 감정의 정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해결된 줄 알았던 그 상처는 여전히 우리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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