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사과 Sep 05. 2024

축복인가 걱정인가

29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고, 새로운 분야에서 오는 긴장과 설렘 때문이었을까. 임신임을 일찍이 알았는데도 이상하게 병원은 최대한 늦게 가고 싶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들은커녕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세 번째 임신에 대한 설렘이 없다기보다는 최소 12주에서 16주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순차적으로 알리는 게 모두의 관행처럼 여겨졌을 뿐이었다.



여기저기서 저출산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의 시대. 어떤 기업은 출산을 하면 1억을 주겠다며 큰 이슈가 되는 지원 정책을 자랑하고, 지방의 외곽 지역은 인구 유입을 위해 출산 장려금을 5천만 원 이상 준다는 기사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목돈을 준다고 해서 저출산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육아, 특히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겪고 육아를 하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결과일까 의구심이 든다. 단순히 돈을 준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 그들은 현실에서 육아를 실제로 하고 있는, 이 와중에 셋째까지 임신한 나를 마치 출산 장려금이라는 금전적 지원을 받기 위해 낳는 것처럼 단순하게 일반화시켜 버리는 것과 뭐가 다를까. 내가 살고 있는 제주는 둘째나 셋째 출산이나 출산 장려금이 동일하다. 이 금액은 5년간 분할 지급되기에 도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출이 되면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사실 이 금액을 달로 나누어 계산하면 매달 16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돈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육아에 얼마나 실질적 가치를 줄 수 있을까? 그 가치를 온몸으로 누리고 느낀다면 무자녀 부부로 살아가는 딩크족들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왜 점차 늘어날까? 특히 만 39세 이하 청년 부부 중 딩크족의 비율이 1/3로 높아지고 있는데, 출산장려금 지급이 과연 그 해결책이 될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왜 출산을 하지 않으려는지, 출산 이후에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부분들이 실제적으로 필요하고, 무엇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지, 사회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 면밀히 살펴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그럴까. 임신 확인서를 떼러 첫 방문을 했던 산부인과 의사가 셋째 임신이라는 나의 말에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아이고..아이 셋을 어찌 키우시려고."라고 했다. 여의사였음에도 그 한 마디에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민과 해결되지 않는 숙제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축하나 축복이 아닌 나를 향한 걱정의 한탄. 함께 일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모두 충격과 쇼크를 받은 듯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 미쳤나 봐!"

"그러게요, 저희 평소에 엄청난 거리감을 두고 사는 부부인데 어쩌다 한 번 친밀감을 가진다는 게 덜컥..."


심지어 너무 걱정된다는 사람은 힘들어서 어떻게 키우냐며, "지워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도 했다. 첫째와 둘째를 임신하며 다녔던 병원에 셋째 태아의 초음파를 보러 갔을 때, 오랜 기간 나를 봐왔던 의사조차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축하가 아닌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임신 확인을 하고 한 달도 더 지나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임신 소식을 전했다.

"누나 임신했어."

"뭐라는 거야?"

"셋째 임신을 하게 됐어. 그래서 몸 상태가 지금 막 좋지 않으니까 알고 있으라고."

"헐... 말이 안 나온다, 누나. 이혼하네 마네 어쩌더니 셋째라니, 하."

"그러게,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이라잖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와... 나는 할 말이 없다, 누나."


곧이어 부모님께도 소식을 전했다.

"얘가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둘도 힘들어서 죽으려고 하면서 무슨 셋째야!"



유일하게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던 건 아이 넷을 출산해 본 지인 언니였다. 너무 기특하다고, 축하한다고, 그건 정말 큰 축복이라고. 내가 정말 원했고 남편을 설득시켜 이루어진 임신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후에도 셋째 임신 소식을 전할 때마다 축하가 아닌 걱정의 말을 더 많이 들어야 했다. 그래서 부정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임신이 된 것처럼 둘러대야 했고, 속으로는 뱃속에 찾아온 셋째 태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음이 쪼그라드는 불편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때마다 발견한 독특한 공통점은 신기하게도 셋 이상을 출산해 본 분들이나 어르신들만 무조건 너무 잘됐다고, 아주 큰 복이라고, 애국자라며 축하인사를 기쁘게 해 주셨다는 거였다. 그 걸로 나마 이미 경험해 본 분들의 축하인사 안에 담긴 아이 셋의 행복 미리 보기 같은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 들었고 위안을 삼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