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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해결되지 않는 어떤 특정한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면, 크게 애쓰지 않던 어느 순간 그 답이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종종 그런 경험을 했다. 애써서 억지로 답을 찾으려 그 질문에 매달리면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 생각의 틀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그 질문을 마치 버킷리스트처럼 내 삶의 질문 리스트에 올려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이따금씩 그 질문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그 답을 찾게 되는 우연한 만남이나 기회가 생기곤 했다. 나는 이렇게 명쾌한 해답들을 얻어가며 무수한 질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며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있어 출산 후 질문 리스트의 화두는 언제나 남편과의 관계였다. 유독 이 리스트만큼은 오랜 시간 동안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이 늘어만 갔다. 도대체 왜일까? 도대체 왜.
그러던 중 나는 분노에 못 이겨 결국 실수를 저질렀다. 시아버지께 남편과 이혼하겠다는 문자를 떡하니 보내고,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제가 연락 안 한다고 서운해 마세요. 둘째 아이 백일 때부터 7개월이 넘도록 아드님이랑 남처럼 살았어요. 술 마시러 나가서 새벽까지 연락 안 받고 전화 한 통 없이 퍼마시고 들어오는 것 여러 번 참았고, 공부도 안 하고 투자 잘못해서 그냥 앉아서 없는 돈 1억 넘게 그냥 날린 것도 참았는데요, 폭력 쓰는 남자랑은 못 삽니다. 그것도 애들 앞에서요. 폭력은 시작되면 더 심해지지 안 없어집니다. 이혼할 겁니다. "
원래 이렇게까지 쌀쌀맞고 냉랭하게 문자를 보내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저녁 6시에 나가서 술 먹고 새벽 1시 반에 들어오고, 종일 전화 안 받는 사람이 아빠 자격이 있는 건지 아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말도 섞지 않고 남처럼 살다가 5일 전에 애들 생각해서 겨우 대화로 풀고 잘 지내보자 했는데, 오늘 또 회식이라고 나가서 연락도 없이 안 들어오네요? 저는 애들 둘 혼자 키우느라 거의 맨날 밥도 못 먹고살고, 온몸이 부서지고, 진짜 너무 힘들고 몸이 아파서 매일 같이 죽네사네 하는데 말이에요. 부동산 투자 하겠다고 앉아서 2억 날려먹고 이렇게 사는 것도 지겹고요. 죄송한데요, 제가 이렇게까진 연락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저 이 남자랑 같이 더 이상은 못살겠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도 연락하지 마시고 서운해 마세요.'라는 내용으로 나름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배알이 제대로 꼬인 상태에서 결국 사달이 나도 아주 제대로 나버린 거다.
나에게는 이것이 한계였고 끝이었다. 7년 만에 다시 이 남자의 밑바닥을 제대로 본 것이다. 처음 밑바닥을 볼범직 했던 것은, 혼인신고 하고 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속눈썹 연장술을 받으러 어느 시장통에 있는 미용샵에 갔는데 가는 길에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고 짜증이 났는지 대뜸 샵까지 쫄래쫄래 따라 들어와서는 처음 보는 샵 주인 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내 표정과 내 말투가 그렇게 싫었을까. 자기를 무시하는거냐며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은 내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모습이었다. 늑대가 그동안 순한 양의 탈을 쓰고 있었던 걸까 싶을 만큼 다른 얼굴과 다른 말투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쿵쾅거려 금세라도 터질 것 같았다. 처음 만난 샵 주인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 친구분도 같이 계셨는데, 그 두 분도 당황스러운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하시고 눈깔이 뒤집힌 그를 보며 두려워하기까지 하셨다. 나는 그가 내 남편이란 사실이 수치스럽고 몹시 부끄러웠다. 어제 혼인신고 한 것을 취소할 수 있는지 주민센터에 전화해 알아볼 만큼 내 나름의 심각한 일이었다. 이 사람에 대해 알고 지낸 지 고작 11개월 채 되지 않았을 때,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상태로 혼인신고부터 덜컥해 버렸으니 나는 제대로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후로 7년 만이었다. 다시 그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나는 결코 너와는 살지 않으리라 맹세했었다. 그런 그가 삽시간에 밑바닥의 치부를 또다시 보인 것이었다. 남편과의 불안정한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감정 통제가 되지 않고, 부정적 감정이 무수하게 쌓여만 가니 나도 어느샌가 첫째 아이에게 짜증과 화를 내고 말았다. 사실 그날 일은 별일 아니었다. 아빠랑은 양치하기 싫다고 엄마랑 하겠다고 떼쓰는데 그날은 유독 내가 아이의 그 떼를 받아주고 싶지가 않았던 거다. 아빠랑 하라고 이르고 달래서 보냈는데, 그때 남편도 귀찮고 힘들고 싫은지 겨우 아빠한테 찾아가 "양치시켜 주세요"라고 말한 아이에게 "엄마랑 가서 해"라고 거부하고 다시 돌려보낸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나는 그 상황에서 남편에게 쌓인 짜증과 화가 터져버렸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를 거실로 내보내고 방문을 잠가버렸다. 화살이 아이에게 가버렸다. 아이는 미친 듯이 펄떡펄떡 뛰면서 울며 방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다. 그런 와중에도 남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했다. 평소에도 아이들이 울 때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 받아내고 소화시키고 순화시키는 역할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아이들의 감정 쓰레기통과 같은 내 마음은 이미 꽉 찬 데다, 남편에 대한 화까지 겹쳐 쓰레기통이 넘쳐흐르는 형국이었다. 나는 방문 밖에 거실이란 한 공간에 아이와 함께 있는 남편이 평소와는 다르게 움직여 줄 것을 기대했다.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의사표시가 문을 닫은 것이었고, 너에게 도움을 청하니 해결을 좀 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상황은 나의 의미와는 정 반대로 다르게 흘러갔다. 점점 날뛰며 소리가 커지는 첫째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는 아이 앞에서 괴성과 같은 소리를 함께 질렀다. 발길질을 하고 손과 발로 문을 부숴대듯 쳐댔다. 첫째 아이의 무서운 소리가 방문 밖으로 들렸다.
"아빠 하지 마!!!!!"
아이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전쟁터에 나가 총을 쏘고 있는 듯한 그는 계속 내가 혼자 차지하고 있는 안방의 문을 찼고, 그 끝내 문을 부수듯 열었다. 나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가 발길질 소리마다 쿵쿵 덜컹거리더니, 방문이 열리면서 뛰어들어와 나에게 쫓기듯 안기는 아이와 함께 그대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주위에서 착하다 사람 좋다 한들, 다 가식적인 착한 척이고 결국 본성은 저렇구나 싶었다. 내가 볼 땐 그가 분노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이혼을 결심했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 남자 때문에 심리가 불안정할 것이고 그 악영향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갈 것이 뻔했다. 이미 아이들은 피해자고 희생자였다. 이 순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첫째 아이였다.
나는 그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과 말로 설명하지 못할 충격감을 견디지 못했다. 이 사람과의 관계는 나에게 더 이상 어떠한 희망도 줄 수 없다는 확신에 크게 절망했다. 아이를 품에서 떼어내고 한 김 식히려고 마당에 나갔는데, 곧바로 첫째 아이가 울부짖으며 뛰쳐 따라 나왔다. "엄마!!!!"라고 소리 지르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찾기 위한 애씀으로 맨발로 뛰쳐나오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웠고 그걸 보는 나는 속이 썩어 문드러질 것처럼 아팠다. 왜 그와의 갈등이 아이에게 전가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아이를 구분해야 함을 알았고, 아이의 울부짖음 소리를 들으며 재빨리 마음을 분리시키려고 애썼다. 그사이 그도 이성을 찾았는지, 둘째 아이를 안고 따라 나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미안하다는 얘기는 귓바퀴로도 들리지도 않았고, 앞집 사람이 이 광경을 다 보고 듣고 했을까 염려되는 창피한 마음만 가득했다.
싫었다. 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매번 이 남자로 인해 들끓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좋아질 기미가 없는 것 같았다. 다시 잘해보기로 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 사이에 여러 번의 갈등이 이미 수차례 계속해서 일어났다.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다 부질없는 망상과 헛소리라고 느껴졌다. 다시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한 생각이 시작됐다. 나와 더 이상 아이들이 나와 남편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떻게 아이에게 주게 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경제적인 부분부터 감정적인 부분까지, 내가 이 아이들의 인생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고민에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