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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를 임신했다고 하면 대부분이 부부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에 셋째까지 가지게 되었을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첫째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우리는 거리가 있는 부부로 살고 있었고, 나는 종종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는 아내였다. 수련을 통해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중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었다. 육아로 인한 피로감과 지침은 신체적 관계를 멀어지게 할 수 있지만, 완전히 단절되게 만드는 것은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남편은 셋째를 극구 반대했었다. 절대 우리에게 셋째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셋째 임신이라니.
사실 둘째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던 순간, 셋째에 대한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영감이 떠올랐다. 첫째를 난산으로 낳고 나서, 비교적 순산을 경험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출산의 순간만큼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아, 이렇게라면 셋째도 그냥 낳겠어. 셋째를 가져야겠어.'
그러나 출산 이후 육아와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그 단순한 생각은 접어둔 지 오래였다. 그런데 묘했던 건 둘째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가슴에 사무치게 예뻤다는 거다. 첫째를 키우면서도 느꼈던 감정이지만, 둘째를 키우며 느낀 감정은 결이 달랐다. 수많은 고통을 삽시간에 잊게 만들 만큼의 진정한 사랑이었다. 마약에 중독되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순간적으로 강력한 도파민이 뇌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 상태를 한번 알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 상태를 원하게 되는 것이 나에게는 양육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왔다. 남편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려, 남편에게 어떤 기준을 들이대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보려 했고,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더 큰 개념의 사랑으로 대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남편에게 넌지시 계속해서 의사를 물었다.
"여보, 둘째가 유독 너무 예쁘지 않아요?"
"응, 예쁘지."
"저는 둘째 보고 있으면 당장 죽어도 될 만큼 너무 예뻐요. 예뻐서 미쳐버릴 것 같아."
"어, 맞아. 셋째는 그래서 더 예쁘대."
"그러니까요, 둘째가 이렇게 예쁘면 셋째는 얼마나 예쁠까요? 안 낳아본 사람은 절대 모를 거야, 이 마음을... 우리가 이렇게 알고 느끼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해요, 그렇죠?"
"응. 셋째는 얼굴도 더 예쁘다던데? 어르신들 말이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고 하고, 주변에 보면 진짜 셋째들은 다 예쁘게 생겼어."
"와... 우리 셋째 가지면 진짜 예쁘겠죠?"
몇 개월간 지속된 셋째에 대한 나의 강력한 열의는 마침내 남편에게 전해졌고, 철창처럼 굳게 닫혔던 그의 마음의 빗장을 열게 했다. 그리고 새해 다짐과 같았던 포부는 즉각 이루어졌다. 첫째도 둘째도 그랬듯, 셋째의 생명은 그렇게 우리에게 단걸음에 찾아왔다.
셋째라 그런지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을 진작에 확인하고서도 바로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다. 임신 호르몬(HCG)이라고 흔히 부르는 인간 융모성 고나도트로핀은 아주 초기에는 확인하기 어려워 일반 임신 테스트기로는 보통 관계 후 2주가 지나야 검사하게끔 되어있다. 그보다 HCG 농도를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얼리 임신 테스트기로 2주보다 먼저 확인할 수도 있다. 칼각처럼 규칙적이던 생리 예정일이 지나자 기대감에 부풀어 검사를 했고, 처음에는 음성으로 확인돼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버린 임신 테스트기를 다시 꺼내서 보더니,
"이거 두 줄인데 음성이라고?"
"응? 제가 확인했을 때는 한 줄이었는데요? 두 줄이라고요?"
"이거 희미하게 나와도 두 줄이야."
"어머, 진짜 이상하다. 내가 5분인가 10분 뒤에 확인했을 때는 아주 명확한 한 줄이었어요."
"참나. 세 번째나 임신하는 사람이 임신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갈 뻔했네. 좀 더 지나서 다시 검사해 봐요."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고서도, 임산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미신 같은 게 있다는 건 몰랐다. 이상하게 병원 가서 초음파로 확인하고 오기만 하면 입덧이 귀신같이 시작된다는 거다. 첫째, 둘째를 임신했을 때 언제부터 입덧이 시작됐는지 기억나지 않고, 온통 입덧에 대한 고생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임신한 걸 알고 두 달 가까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서 임신이 맞다는 확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 미신이 미신이 아님을 알게 됐다. 기가 막히게도 병원에 다녀오자마자 입덧이 시작됐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지옥 같은 입덧이. 아이 둘을 임신하면서 겪었던 것은 감히 입덧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 같은 입덧이었다. 그리고 그 입덧이 나를 깊은 암흑의 나락으로 내동댕이 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