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니핑의 애달픈 이야기
오늘은 딸과 공식적으로 첫 데이트하는 날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냐는 말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겠다는 여섯 살의 패기는 괜스레 엄마 마음을 우쭐하게 만들었다.
딸이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시리즈 책 두 권을 찾아 한참을 보더니, 집에 빌려가겠다며 내게 맡겼다.
바로 나갈까 하다가 “더 빌리고 싶은 책 있으면 가져와” 하니, 아이는 다른 책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어떤 분이 다가오더니, 우리가 빌리려던 책 중 하나를 덥석 집었다.
“지금 다른 책 보고 계시니, 잠깐만 보고 있을게요.”
“아… (아이를 보니 울먹이며 싫다 하고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이미 책은 그 손에.) 네… 빌리려고 한 거라서요.”
잠깐이라 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나갈 시간이 되어 책을 돌려달라 하니, 그 사람이 말했다.
“여기 근처 사세요? 제가 친정에 여행 왔다가 다음 주에 올라가거든요. 그리고 저희 아이도 이 책 찾고 있었어요. 아마 제가 도서관에 먼저 와 있었고, 오늘 여기 몇 시간 있었거든요. 아직 대출 안 하셨잖아요. 책이 그쪽 것도 아니고 공공의 건데, 제가 가져갈게요.”
“…네? 잠깐 보신다고 하셨잖아요?”
“시리즈 두 권 다 빌리실 거예요? 하나는 제가 가져갈게요. 저희 아이가 집에서 보고 싶어 해서요.”
“저희 아이가 이거 보려고 도서관에 왔고, 오자마자 찾아서 빌려가려던 거거든요.”
“아니, 저희 아이가 난리 나서요. ㅇㅇ야, 이거 집에 가져가서 보고 싶어?”
(속으로: 질문이 왜 이 모양인가?
상황을 이렇게 끌고 가겠다는 건가?)
“응. 나 이거 집에 가서 볼래.”
그쪽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우리 아이에게 물었다.
“ㅇㅇ야, 이거 이 친구한테 양보하고 다음에 빌릴까?”
“아니. 싫어.” (울먹울먹)
이후에도 같은 대화가 계속 반복됐다.
“ㅇㅇ아, 이거 집에 가서 보고 싶어?”
“응. 집에 가서 보고 싶어.”
“저희 아이가 집에서 보고 싶어 해요.”
… 이게 무슨 상황인가.
“저희가 바로 빌려 나갔으면 도서관에 아예 없을 책인데요. 아이가 정 그러면 책을 사주시던가, 다른 도서관에서 찾아보셔야죠. 왜 저희 아이가 빌리려는 책을 뺏으세요? 잠깐 본다 하시고 약속도 안 지키시면서.”
그러자 그 엄마가 정색하며 말했다.
“아직 대출은 안 하셨잖아요. 그러면, 여기 직원분들을 불러서 얘길 해야겠네요. 다시 책 뺏기면 저희 아이 난리 날 거고, 제가 감당을 못해서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책을 뺏기다뇨. 제가 시간이 없어서 얼른 나가봐야 해서요. 그쪽 아이의 결정을 계속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친구야, 이거 이 친구(우리 딸)가 먼저 빌린 거라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다리자. 혹시 일찍 반납하면 그때 빌려서 보자. 책 돌려줄래?”
그 아이는 아쉬워하면서도 책을 내게 건넸다.
성인보다 아이가 말귀를 더 잘 알아듣다니.
나는 여행 사정, 도서관에 몇 시간 있었다는 얘기, ‘공공의 것’이라는 주장까지 들어야 했다.
기본예절, 상식, 규칙은 어디로 간 걸까.
아이에게 휘둘려 가르칠 것을 가르치지 않는 어른.
무례한 권리 주장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사람.
나는 그 황당한 논리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아닌 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아이부터 배워야 한다.
이토록 격한 갈등을 야기한 애달픈 책은 바로,
‘티니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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