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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이 Dec 09. 2018

그냥 사장이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사장님' 혹은 '임 사장' 정도로 불리셨다.

나의 중학교 입학 이후까지 봉제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는 나도 당연히 이 봉제공장을 운영하게 되리라 믿었다.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사업을 하셨기에

(물론 아버지 주도형 사업이었지만)

부모님은 사업의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별로 숨김없이 이야기를 해 주시는 편이었다.

물론 모든 진실을 말씀해주셨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사업이 어려워질 때는 어렵다, 그래서 정리를 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제조업을 정리하고 소매업으로 전환하여 의류매장을 오픈할 때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대학을 중국으로 진학을 하는 바람에, 정작 어른이 되고서는 부모님의 사업 흐름을 에서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이 시절에는 사업 정리 정도만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영업자로써의 고충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막연히 나도 사장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중국으로 대학을 진학하며 중국어를 익혔고,

한국에서는 대학원 생활을 하였다.

학업을 마치고서는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고,

한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은 중국의 성장세가 엄청났던 시기였고, 우리 회사에게도 중국시장이 가장 중요한 시장이었다. 나는 중국어 특기로 입사를 한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선배들이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따금씩은 대표이사님, 전무님 등의 행사에 통역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난 그분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분들 자리에 오르려다 실패한 사람들처럼 되기 싫었다.


물류회사의 영업부서의 지원담당이었던 나는 당시 한 회사의 재고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물론 여러 업무 중의 하나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창고에 A, B 제품이 현재 몇 개가 있는지, 입출고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면 된다.
가끔은 창고 담당에게 전화를 걸어 카운트를 해 달라고 부탁하여 내 엑셀 파일과 대조를 한다.

 

거래처 중 한 곳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이고 독일에 물건을 수출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수출업무를 맡으면서 현지 창고에서 보관업무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필요시 현지 창고에서 거래처의 최종 납품처까지의 운송까지 맡는 프로세스이다. 


이 거래처는 항상 재고를 극히 조금만 준비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시기성에 맞는 수출이 필요했고, 또 독일 현지의 재고 관리가 무척 중요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각 부품의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아마 지금이라면 이러한 일련의 재고 관리 업무가 시스템을 개발해서 진행할 듯한데, 당시는 그저 엑셀 파일에 의존해서 재고 관리를 했다.

매일 재고관리 압박의 스트레스가 상당했는데, 거래처에서는 부품 하나가 몇 백씩 하니 틀리면 안 된다고 엄청난 협박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역시 한 부품의 재고 상황 확인을 요청받았고, 독일 현지 출근시간인 오후 3시에 맞추어 독일지사에 전화를 했다. 

"대리님, 이 부품 실 수량 확인해서 사진 찍어서 좀 보내주세요."라고 나는 늘 그렇듯 정중한 요청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야, 너는 출근하자마자 짜증 나게 전화질이냐.." 

순간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짜증이 올라왔고, 선배와 거래서 사이에 끼어서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럼 당장 해달로 하는데 어떡합니까! 씨발!"라고 소리치고 전화를 꽝하고 내리쳤다.

회사에서 순둥이로 소문났던 내가 소리를 질러가며 전화기를 부셔버릴 듯 던지자 사무실 분위기는 싸 해졌다.

얼마 뒤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나를 불러 담배를 피우러 가는데 같이 나가자고 부른 선배는 회사생활이 다 그렇다며 참아야 한다고 했다.


이 일로부터 두 달이 조금 지나 사직서를 작성했다. 인사부로부터 사직서 양식을 얻어 작성하고 결재를 올리고선 부장님을 제외한 부서 전 직원과 동기들에게 메일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아있는 사람들의 업무에 영향을 미칠 만한 썩 좋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되지만, 당시에 나는 나를 고생시킨 회사에 대한 작은 복수라 생각했다.)



발신 : 임상규 사원

수신: ㅇㅇ 영업부 , 2008년 하반기 신입 사원


사직서 양식 첨부드립니다. 필요하신 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첨부) ㅇㅇ 회사 사직서 (양식)





약 3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이사를 왔다.

어찌하다 보니 준비 없이 사장이 되었다.


맞다,

나 사장이 되고 싶어 했지.

나 성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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