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이 없고 키워드만 있지
대화의 목적을 따라가지 못하고
키워드만을 따다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난 이.
그게 나였다.
소설을 읽다가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거나
사건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나타나는 단어에 꽂혀서
줄거리를 놓치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런 내가
촉새가 방정을 떨듯이
맥락을 읽지 못한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지나가는 모든 정보에 주의를 빼앗겼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를 타고 가다 모든 간판이나 모든 차량의 번호판을 정보로 인식했다.
보조석에 앉은 이와 대화를 하다가도
간판을 소리내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사람이 너무 많은 곳
아니면 모두가 말을 하고 있는 공간에서는
온연히 나의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한명 한명이 하는 말을, 행동을 다 흡수하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고,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용기가
(가고 싶지 않은 곳에 욕을 먹더라도 안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서부터는
4명보다 적은 사람이 시끄럽지 않은 곳에 모여야 참석했다.
그런 환경이어야 겨우
내가 마주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코딩이 좋았다.
조용한 방에서 까만 화면만 마주하면 됬다.
너무 도전과제가 어려우면 잠시잠깐 사이에 다른 짓을 하게 되는데,
코딩은 늘 될듯 될듯 아주 작은 것들이 안되었기에
잠깐의 디버깅에 그 집중력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코딩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저 시끄러운 것들이 싫다고 생각헸다.
내가 집중력이 부족한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TV를 틀면
광고에서 눈도 떼지 못하고
계속 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