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얼른 파이어족을 해버려야 하나?
"맴(Ma'am)~ 나 이번 주 일요일에 쉬는 날 맞지? 그때 에이전시에 가서 비행기 표 사고 곧 집에 갈 거야."
또 시작이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만 되면 무슨 통과의례처럼 매번 이렇게 협박을 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평일에는 아이가 학교에 종일 가니 할 일도 없고 편하다가 주말만 되면 아이를 보느라 힘들다며 이렇게 투정 반 협박 반 겁을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는 헬퍼의 이야기이다.
싱가포르에는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입주 도우미(헬퍼)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 두 부모가 모두 일을 해야 하는 집은 필수와도 같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새로운 헬퍼의 입국이 이전 같지 못하다 보니 싱가포르에 있는 헬퍼들의 기세가 아주 등등하다.
아이 있는 집은 아예 가고 싶지 않다. 월급은 최소 이만큼 받아야 한다. 본인 쉬는 날은 이만큼 확보되어야 한다.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등등. 요구 사항이 갈수록 늘어가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도 맞벌이를 하는 가운데 아이를 키우며 어쩔 수 없이 헬퍼를 쓰게 되었다. 아이를 대신 봐준다 생각하니 고마워서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잘 맞춰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이 사람들이 고마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만만하게 보기 일쑤이다. 본인의 일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생기고 급기야 다른 집에 가야겠네 본국으로 가야겠네 하며 협박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때문에 이번에는 나이는 조금 있어도 진득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는다고 뽑았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조금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집에 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아이가 소파에서 떨어지게 만들고는 오히려 본인이 큰 소리를 치며 본국에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하지만 이제 곧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기에 사람을 다시 찾기도 어렵고 이 아줌마도 그런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그래도 첫 달은 아이의 안전에 관련해서만 좋게 말을 하며 지적하면 나중에는 결국 미안하다고 하면서 듣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툭하면 집에 간다고 하며 본인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일도 시키지 말아라 이런 태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옆에서 남편이 받는 스트레스도 어마 무시하다. 아줌마가 아이를 보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남편과 나에게 일이 그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도움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붙잡아 두고는 있으나 차츰 회의감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출산 휴가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떨 때는 회의도 제대로 참여를 하지 못하고 아이를 쫓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아이를 방치해서 통곡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너무 슬픈 마음이었다. 하물며 부부 모두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함께 있는데도 저 모양이라면 행여 우리 둘 모두 출근이라도 하면 어떤 모습일지. 그러면서 아이가 너무 측은해진다. 아줌마가 더 열심히 아이를 봐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들여서 사람을 쓰는데 우리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결국 일은 스스로 다 하고 있는데 하며 급기야 '아줌마의 효용'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뭣하러 이 아줌마 비위를 맞춰가며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누가 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직접 기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고민했다. 물론 몸은 엄청나게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할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아줌마들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 하나라면 그래도 일을 하며 할 수 있을 텐데 둘째까지 나오고 나면 그때는 정말 막막할 것 같다. 그럼 결국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고작 헬퍼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양육과 정서 관리를 위해서는 어쩌면 더 나은 투자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아니면 이미 이 모든 상황에 지쳐버려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이번 해 말까지는 출산 휴가를 쓸 수도 있고 첫째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니 힘들더라도 둘째만 집중 케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 어떻게든 생각하고 고민해서 확실히 방법을 찾아야겠다.
둘째 아이가 만 2세가 되면 그때부터는 어느 정도 육아가 수월해진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만 잘 버티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까지도 영아시설(인펀트 케어; infant care)에 보내든지 하고 일도 재택근무를 계속 하든 플렉시블 타임(flexible time)을 적용하든 해서 말이다.
아무튼 계속되는 고민의 중간 결론은 '남에게 내 애들을 온전히 맡길 생각은 말자'이다. 하물며 친엄마라고 해도 아이를 보다 보면 지치거나 짜증이 날 때가 있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은 오죽하겠는가.
올해 말, 출산 휴가 종료 후 최종 결론이 '조기 은퇴 후 전업맘의 삶'이 될지 '우당탕탕 워킹맘의 삶'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엇이 되었든 나와 남편, 아이들, 가족 모두에게 최선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