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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May 14. 2022

적당히 쓰고 살자 (싱가포르 출산 후 생각)

파이어족과 재테크를 위해 무조건 아끼지 않기

지난 화요일에는 드디어 둘째를 출산했습니다.   


지난주까지는 금요일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었는데요. 이번 주는 선생님이 화요일에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하고는 아침부터 열심히 샤워를 하고 제일 편한 원피스에 제일 편한 크록스 슬리퍼를 신고는 병원에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검사 도중 선생님이 "일찍 아기를 낳고 싶니?"라고 물으셨고요. 최근 1~2주 몸도 많이 무거워지고 숨 쉬는 것도 불편해져서 "네!" 하고는 바로 입원을 했습니다.




싱가포르 파크웨이 이스트(Parkway East) 병원 분만실




그런데 막상 입원을 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아이를 낳는다는 게 실감이 안 나더라고요. 어째 둘째 아이인데도 출산이 막막한 건 여전했어요. 막상 첫째 아이도 진통만 25시간을 하고 겨우겨우 낳았던지라 떨리기도 했고요. 둘째도 하루 넘겨서 진통하다가 출산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크웨이 이스트 병원(Parkway East Hospital)의 유명한 헹(Heng) 선생님은 걱정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걱정하지 마. 12시간도 안 걸려서 금방 낳게 해 줄게." 라며 자신감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의 짬밥(?)인가요?)




출산에 무통 출산은 필수? 첫째 때 출산의 공포가 생각나서 얼른 맞아버린 무통주사(Epidural)와 링거




그렇게 아침 9시 반에 입원을 해서는 오후 2시쯤 선생님이 다시 오셨는데요. 마침 병실에 있던 간호사와 눈빛을 주고받으시더니 "둘째인데 좀 미리 해볼까?" 하시고는 갑자기 침대 진열을 바꿔버리셨어요. 그러더니 "자 신호를 주면 힘을 줘봐요." 하십니다.


으앗. 얼떨결에 유도분만 약을 넣은 지 4~5시간 정도만에 출산을 시도했는데요. 마침 유튜브에서 진통과 출산 시 호흡법 영상을 본 게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출산을 앞두신 분들은 미리 보고 연습 많이 하시면 좋을 거예요.)



https://youtu.be/ThlhSwqFv88

  



그렇게 4번 흡! 흡! 흡! 흡!! 힘을 주니 둘째가 '으앙~ 응애~~'하고 태어났습니다.

앗, 둘째들은 힘만 줘도 순풍 나온다더니 정말인가 봐요. 순식간에 아이가 나오다 보니 무통주사 효과도 있어서 하나도 아픈지 모르고 금방 낳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비교적 순조롭게 나온 둘째 얼굴이 하얗고 뽀샤시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첫째가 생각나면서 괜스레 너무 미안해졌습니다. 첫째 때도 이 베테랑 선생님한테 왔으면 아이가 조금 덜 고생했을까? 금방 아이가 나올 수 있었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던 거지요. 25시간의 진통이 저도 고통스러웠지만 아이에게도 너무 힘이 들었을 테니깐요. 그래서 그런지 첫째는 나올 때 얼굴이 까맣고 보라색으로 제대로 질려서 나왔었습니다. (ㅠㅠ)   


그때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껴본다고 국립병원에 갔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이번 사립병원에서의 총 출산 비용이 더 저렴했습니다.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네요.)




1. 첫째 때 총 출산 비용 (SGH; Singapore General Hospital 싱가포르 국립병원)

$9,226.39 (한화 약 848만 원)

---> 1인실; 3박 4일; 자연분만; 특별 도움을 받고 출산(아이 머리를 집게로 끄집어 냄; Forceps); 출산 후 아이 특별 케어실 1박 2일 입원


2. 둘째 때 총 출산 비용 (Parkway East Hospital 파크웨이 이스트 사립병원)

$8,569.12 (한화 약 788만 원; 2022년 5월 14일 환율 기준)

---> 2인실 (그러나 혼자 입원); 자연분만




이번에 입원실은 2인실이기는 했지만 혼자 입원해서 오히려 1인실보다 넓고 쾌적하게 쓸 수 있었고요. 국립병원 때보다 병실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서 혼자 쉬기에 좋았어요.  


그리고 국립 병원 때는 출산실에만 20명이 넘는 간호사와 의사, 레지던트, 인턴 등 사람들이 가득 차서 혼잡하고 때때로 부끄러운 느낌까지 들었는데요. 심지어 입원실에도 3~4명이 되는 팀이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찾아와서 제대로 쉴 수 없었고요.


그런데 사립병원은 분만할 때도 의사 1명, 간호사 1명, 총 2명, 입원실에는 필요할 때만 간호사 1명이 찾아와서 더 안정감이 있고 잘 쉴 수 있었어요.  




싱가포르 파크웨이 이스트(Singapore Parkway East hospital) 2인실




또 병원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라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아이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들르기에도 편했고요. 입원실 창 밖으로 아이 유치원이 보여서 첫째가 놀이터에서 잘 놀고 있는지 내려다 보기도 하고 여러모로 편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식이 국립병원 때보다 선택의 종류도 많고 맛이 있었는데요. 국립병원에서는 '중국식, 서양식, 말레이식' 이런 식으로 크게 종류만 선택할 수 있었는데요. 반면 사립병원에서는 애피타이저, 메인 메뉴, 후식, 음료수 등 코스를 모두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파크웨이 이스트 병원의 출산 후 식사 메뉴

 

 


이전에 국립병원에서는 중국식을 시켰다가 입맛에 맞지 않아 남편이 대신 먹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서양식, 말레이 음식, 싱가포르 현지 음식 등이 모두 맛있게 나와서 매끼 다른 메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햄버거 메뉴
아침 호박죽 메뉴
칼국수 면에 야채, 해산물이 들어간 현지 메뉴
락사(Laksa) 메뉴
가재가 들어간 아침 죽 메뉴

   



이렇게 사립병원에서 아이도 편하게 금방 낳고 밥도 잘 먹으면서 생각했던 건 '돈 아낀다고 괜히 고생하지 말자. 특히 아이들 고생시키지 말자'였습니다. 사실 회사에서 일정 부분 출산비 보조가 나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아껴보겠다고 했다가 첫째 때 고생을 많이 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째한테 너무 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둘째 케어를 위해 헬퍼냐 유아원(infant care)이냐 하는 선택에 있어서도 돈보다는 아이의 안전과 건강, 쾌적한 환경을 더 생각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아주 아이를 잘 보고 자세가 바른 헬퍼를 찾지 않는 이상 유아원에 보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인데요. 싱가포르에서 유아원은 월 $2,000(=한화 약 184만 원) 정도로 헬퍼 고용 비용, 월 $1,000(=한화 약 92만 원 정도)에 비해 훨씬 비싸기는 합니다. 하지만 요즘 헬퍼들의 근무 자세가 많이 좋지 않고 특히 아이나 신생아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상황이라 고용해 놓고도 쩔쩔매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째 때도 고민했는데 그때는 코로나로 집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헬퍼들의 부족한 점은 스스로 메꿔가면서 어찌어찌 해결하고는 했어요. 그런데 둘째 때는 아무래도 회사 사무실에 더 자주 나갈 것 같고 그럼 헬퍼 관리가 잘 안 될 것 같아서 유아원에 맡기는 게 여러모로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여하간 이번 둘째 출산을 겪으며 계속해서 생각하고 다짐한 것은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자. 사소한 것 아끼려다가 되려 고생하지 말자.'입니다. 


재테크를 하고 파이어족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대신 그렇게 아낀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붓는 지혜로운 조절을 하자고 다짐합니다. 무조건 아끼고 안 쓰고 고생을 하기보다는 쓸 때는 쓰고 아낄 때는 아껴서 그 중요도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짧지만 2박 3일 동안 혼자 병원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지금의 생각이 앞으로의 생활과 방향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게 늘어난 둘째와 식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출산을 축하하며 회사 동료들이 보내온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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