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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리 Nov 01. 2022

큰아들의 장기

 큰아들의 장기     

  난 좋은 엄마이고 싶다. 그러나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대부분 내 욕심이 개입될 때 문제 상황이 생긴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육아서나 부모교육을 통해 이론적 무장을 갖추고도, 막상 돌발 상황이 오면 통제 시스템이 무너진 빌런이 되고 만다. 바로 어젯밤에도 그랬다.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학교에서 꿈, 끼 발표대회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태권도 시범이나 악기를 다룬다는데, 학원을 다니지 않는 두 아들은 할 게 없다며 난감해했다. 한 참을 고민하는듯하더니 막내가 먼저 노래를 불러야겠다며 가족들을 모두 거실에 앉혀놓고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도 부르지 않는 옛 민요가 웬 말인가 싶었다. 성대 결절이 있는 막내의 노랫소리는 들어주기 힘들었다. 음정 박자까지 무시하고 목 놓아 부르는 노래는 구슬프기 짝이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귀여운 구석도 없지 않아 있어 마지못해 박수를 쳐 주었다. 

 “넌 뭘 준비했어?” 큰아들에게 물었다. 소파에 기대 깔깔대며 동생의 노래를 지켜보던 큰아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물 빨리 마시기’를 할 거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기껏 친구들 앞에서 자랑할 거리가 물 빨리 마시기라니. 아리랑보다 더 기가 차 나도 모르게 버럭 호통이 나왔다.

 “바보같이 친구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겠다는 거야?”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아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적잖이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그 순간 남편까지 갑자기 내 편을 들고 나섰다. 두 아들의 장기가 나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큰아들은 금세 다른 걸 생각해보겠다며 잔뜩 풀이 죽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순간 ‘또 실수했구나’ 후회가 되었다.

 큰아들은 굉장히 소심한 편이다. 겁이 많고 대범하지 못해서 뭔가를 결정하는 일이 힘들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해서 전학할 때도 애를 많이 먹었다. 실수할까 봐 걱정도 많은 편이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하고 잘 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런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웬만하면 칭찬하고 도전해볼 수 있도록 용기도 북돋아 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소심해서 문제였던 아들이 과하다 싶을 만큼 관심받는데 재미를 느끼는 것이었다. 일부러 바보 행동들을 해서 친구들의 관심을 사거나, 래퍼처럼 쉼 없이 랩을 하고 다닌다거나, 웃기는 표정이나 과장된 행동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덕분에 친구도 많아지고 여자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올라가는 듯했지만 이런 상황 또한 나는 못마땅했다.

 나는 다시 목소리를 누그러트리고 새로운 장기를 찾아보자고 아이를 설득했다. 큰아들은 글쓰기를 잘한다. 대외적으로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책을 읽으면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하지만 독서감상문을 꼭 써서 기록해놓는데, 그걸 가져가서 소개해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엄마인 내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 감상문 공책을 읽어가며 어떤 작품을 고르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아들은 그냥 엄마가 고른 작품으로 선택하겠다고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등교하는 아들을 꼭 안아주며 감상문 발표를 잘하고 오라고 했다. 아들은 발표는 하고 싶지 않고 전시만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라도 하고 오라며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었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지 않는 아들이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감상문 전시도 할 건 데요, 저 진짜 물 빨리 마시기 장기 하면 안 돼요?”

 허걱. 

 아들은 꼭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결국 난 그러라고 했다. 하교 후에 아들에게 재밌게 잘했냐고 물었다. 아들은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흥이 나 자랑을 했다. 

  “엄마한테도 한 번 보여줄까요?”

  진심으로 안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자니 열 백 번이라도 봐줘야 할 거 같았다. 좋은 엄마가 아니라 좋아해 주는 엄마로서 아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육아서를 읽거나 부모교육을 받아보지 못했어도 자식 다섯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엄마가 그러셨다.

  “애들 다그치지 마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놔둬도 다 잘 큰다. 너희들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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