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걷다

익숙함을 내려놓고, 낯선 길 위에서

by 한난

망설이고, 또 망설이던 시간은 길었지만 막상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지난 6월,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지금, 상하이의 한 낯선 거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6월 글에서 나 스스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 많은 사람이라고 썼는데, 내 인생은 지금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겁 많은 사람이라는 것에는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뭐랄까,,, 햄스터의 쳇바퀴 같은 내 삶에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2019년 겨울, 첫 회사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시절은 코로나와 함께였고, 세상도 회사도 늘 불안정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썼다. 때로는 직접 내 손으로 서비스를 닫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고, 이직과 전적을 거치며 '안정'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되었다.


본사로 옮기고 좋은 팀장님과 팀원들을 만나면서, 마침내 ‘안락하다’라는 감정을 느꼈다. 더 오래 다닐 수 있겠구나, 이제는 내 삶이 안정되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도 이루어 냈다.


사람들은 내게 늘 말했다. “얘는 뭐든 척척해내서 걱정이 없어.” 아마 그것이 나를 설명하는 가장 흔한 문장일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 어쩌면 그것이 그동안의 내 인생을 뒷받침하는 큰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불안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모든 순간 인정 욕구에 집착하며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사람은 모든 것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나의 노력이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도 있었고,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마치 잔잔한 호수 위를 떠다니는 거위 같았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물아래에서는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제야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 주는 남편이 보였다. 또한 이런 내 고민을 잠재워주는 사람들의 응원도 들렸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을 지켜봐 준 지인들은 두 손 모아 이 도전을 응원했다. 또한 내가 하는 모든 걱정들에 대해서 그 걱정이 얼마나 과분한 걱정임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한 퇴사를 했다.

매번 헤어짐을 마주할 때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어떠한 아쉬움도 없었다. 그저 후련했고 남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3개월의 중국어 맛보기를 거친 후, 지난 1일 상하이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일주일 동안 집을 구했고, 내일이면 새로운 집에 들어간다.


아무 계획 없이 목적 없이 매일매일 새로운 작은 도전들을 하며 지내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 도전들 속에서 마주할 나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가 된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며, 나는 그저 나답게 걸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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