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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9.

ep 9. 여행의 변화

    지금 유럽 각국이 국경을 개방중이고 영국은 유럽 대부분국가에 대해 자가격리를 실시하지 않거나 감독하는 인력도 의지도 그다지 없는 것 같아서인지, 프랑스나 스페인,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에서 경험하는 2차 유행의 조짐이 점점 영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엊그제부터는 천 명이 넘는 하루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조금 긴장하는 분위기다. 추가적인 락다운 해제 조치도 보류된 상태. 문제는 이상기온과 폭염으로 비도 오지 않고 다습하기까지 한 이 무더위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마스크에 익숙하지 않은 영국인들이 더욱 마스크 쓰기를 꺼리게 되고 있는 점이다. 원래 한밤중에 20도 이상으로 올라가질 않는 런던이라 그런지 열대야(tropical night)로 인해 잠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어제부터 시작되었어야 할 천둥번개 동반 폭우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하늘이 너무도 맑은게 수상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가격리 목록에 국가들이 빠졌다가 들어갔다가 한다. 스페인이 며칠 전에 다시 추가되어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지인중 한 분도 영국이 너무 답답하다며 정말 오랜만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는데 돌아오기도 전에 갑자기 자가격리대상국으로 묶인 케이스다. 런던종차 35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찾아오면서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한국은 폭우로 침수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들었다. 코로나만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가 복통이다. 

    확진률이 낮은 다른 유럽국가로 잠깐이나마 다녀오고 싶은데 언제 다시 영국을 자가격리대상국에 포함시킬지도 모를 일이고, 영국에서도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서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동유럽이나 남유럽으로 다녀온 사람들도 있다. 요즘은 런던 자체도 날씨가 좋아서 햇빛을 내리쬐러 더 더운 국가로 가고싶은 마음은 없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국내여행이 아주 성수기다. 문을 연 호텔들도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락다운으로 답답함을 어떻게든 표출해야 했던 사람들이 모조리 밖으로 나와야 했다. 국내여행이 최성수기를 맞이한 것은 국외여행의 변수가 예전에는 비행기 추락, 휴대품 분실, 캐리어 분실, 소통문제 등으로 국한되었었다면 이제는 자가격리, 시설격리, 본국송환, 입원 등의 더 크고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실로 단맛을 보면 잊지 못하고 그 이상을 요구하는 존재다. 비행기가 없었을 시절에는 멀미하면서까지 어떻게든 배를 타고 다니고, 횡단열차를 만들지를 않나. 

멀찌감치 떨어져서 걷기. 하지만 보통의 도보여행처럼 서로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고 할 건 다 한다. Social distancing은 사실상 구호에 가까운 것 같다.

    지금 8월 중순 기준으로 영국도 이제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다시 발생함에 따라 당국이 더욱 긴장하는 느낌이다. 한국과 비교가 가능한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주변에 걸렸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주 멀게 건너 건너 건너 한 명?

    이탈리아나 다른 건조하고 따사로운 국가로 가고 싶다. 영국은 위도가 높아서 해가 오래 뜨고 따사롭긴 하지만 습도가 비교적 높은 느낌이다. 왜 이 나라 사람들이 영국의 여름은 푸른 하늘과 나시만 입어도 되는 기온과 차가운 로제와인과 어디서나 조금만 걸으면 볼 수 있는 녹지공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나가려는지 알 것도 같다. 

    이런 락다운을 견디는 가장좋은 방법은 사실상 여행은 아닌 것 같다. 삶의 중간중간에 즐거움을 심어놓고 그것을 향유하는 것이 최선이다. 예컨대 한 달에 한 번씩 미슐랭에서 추천하는 레스토랑에 방문해서 미식을 경험하는 등의 일이다. 이맘때쯤은 유럽인들이 보통 한 달씩 장기 여름휴가를 가는 기간인데, 런던은 1인 가구가 많고 국경이동이 제한적이라 이번에는 그냥 집에서 일하고 겨울이나 다른 때에 몰아서 휴가를 쓰겠다는 친구들도 보았다. 인도계 영국인들이 많이 그러한 것 같다(가족이 인도나 다른나라에 있는 경우 아예 비행편이 없거나 자가격리를 해야하기 때문).


    그나마 위험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이 국내여행이라 잉글랜드 주  안에서 움직이는 여행을 다시 다녀왔다. 이번에는 잉글랜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Northumberland 지역의 Alnmouth라는 마을이었고, National Trust(내셔널트러스트)에서 관리하고 있는 Nether Grange라는 호텔에 묵었다. National Trust에 관해서 조사를 하고 있던 때라서 일부러 이 호텔을 선택한 것도 있었다. 

    문제는 첫날부터 터졌다. 출발역인 King’s Cross(킹스크로스)에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열차가 30분정도 지연된다는 문자가 날라왔다. 그래서 카페에서 앉아 차마시면서 대기를 하다가 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향했는데, 열차가 없는 것이다. 알고보니 지연되었던 열차가 10분정도 일찍 출발할 수 있게 되면서 기다리던 승객들을 태우고 이미 떠났다는 것이다. 왜 플랫폼에서 기다리지 않았냐고 나를 질책하는 직원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한다면서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있는 곳에 있으라는 거냐며 따졌다. 나름의 억울함을 알아주었는지 표를 바꿔주어 그 다음 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입장하지 못하게 플랫폼을 막아놓은 것이다. 그 이유는 사회적 안전거리를 이유로 더이상 열차에 승객을 탑승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좌석예약하고 돈까지 냈는데 승객이 못타게 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러나 이 나라는 우기면 봐주는 나라(?). 탑승하지 못한 승객 중에 어떤 그룹이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이미 구매했고 좌석까지 예약된 상황인데 못타는 게 말이 안된다며 고래고래 따지니, 막아놓은 울타리를 결국 열게 된 것이다. 덩달아 열차에는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지만, 결국 호텔에 도착한 것은 예정된 시각보다 4시간 후.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Alnmouth역까지 가는 열차가 케이블 문제로 중간에 3시간 넘게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이 날 아침부터 모든 열차가 지연도착이었고, 내가 탄 열차 이후의 기차들은 모조리 운행중지된 상황. 이러한 교통지연이 아주 특수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열차가 선로 위에서 하염없이 대기타다가 전 역으로 돌아왔다. 내부에 있는 매점과 간이 식당은 모두 음식이 동난 상태. 락다운 초반 마트 사재기현장을 다시 보는 느낌이 들었다

    작년 가을에 스코틀랜드에 갈때도 국내선 비행기가 2시간 넘게 지연되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기차를 운영하는 LNER이라는 회사는, 열차가 지연되거나 또는 운행상황이 수시로 바뀌는지 항상 메시지를 받으라고 예약할 때부터 안내를 해주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이미 예견한 것 같다. 시스템적인 업그레이드가 많이 필요해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 시국에 굳이 여행을 한다면 더 유연하게 시간계획을 잡고 절대 무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Nether Grange라는 country house(컨트리 하우스. 한국말로 번역을 한다면 전원주택 스타일의 숙박업소). 커다란 체스판이 인상적인 앞 뜰과 그 너머 자연 골프장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Nether Grange는 7월 말 문을 다시 연 거의 최초의 호텔 중 하나다. 모든 호텔 스태프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one-way(입구와 출구를 다르게 함)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식사시간대도 2교대로 나누어 각 테이블 당 3명의 인원만 자리할 수 있게 하였다. 여러가지 불편은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서라도 여행을 온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셋째 날 발생했다.

    이 호텔의 한 스태프가 코로나 확진판정을 오전 10시경 받으면서 이미 산행을 출발한 그룹들은 호텔로 되돌아오고 10시에 출발하기로 한 나는 부랴부랴 짐을 싸서 호텔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 이 호텔은 이제 폐쇄된다면서 모든 승객들은 당장 짐을 싸서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원래는 다음날 체크아웃 예정이었으나 당겨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기차예약도 아예 다시 해야했다. 그런데 사회적 안전거리 방침때문에 기차에 탈 수 있는 승객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예약이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직행열차는 탈 수 없었고 요크(York)를 경유하여 런던으로 중도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로웠던 호텔이 순식간에 패닉상태에 빠졌다. 쫓기듯 나가면서 찍은 사진. 적막감이 흐른다.

    기차 안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밀접 접촉자였으면 어떻게 하나. 지금 머리가 좀 띵한 느낌이고 목도 좀 아픈 것 같은데, 이게 혹시 코로나 초기증상은 아닐까 등등. 아무튼 이 코로나 시대에 여행은 참 힘들다. 여행을 어찌어찌하여 갔어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이렇게 호텔은 폐쇄되고 교통은 처음부터 다시 예약해야 하며 건강에 대한 위험부담 및 정신적인 고통까지 다 감수해야 하는구나 느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혼자 모든 호텔과 교통을 예약하는 것보다는 투어 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변동과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적어도 올해는 굳이 여행을 가야만 한다면 패키지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일체 다른 곳으로의 이동 없이 리조트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쉬면서 휴양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투어회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전액 환불을 포함한 내용이었다. 일단, 정부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반 투숙객들은 의무 자가격리 대상자는 아니다. 만약 자가격리 대상자에 포함되는 사람이라면 NHS(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문자나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 

    아직 별다른 증상은 없지만 이번 주에 사람 만나기로 한 것은 다 뒤로 미루거나 취소시켰다. 당분간 혼자서의 생활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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