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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8.

ep 8. 문화와 취미생활의 변화

    락다운 이후 처음으로 미술관에 방문했다.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는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Royal Academy of Arts)였다. 입구에서부터 입장하는 공간, 표 체크하는 공간 등이 동선이 겹치지 않게 잘 해두긴 했고, 미리 한정된 인원만 예약을 통해서 받고 있다고 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표의 제한을 실제로 둔 것 같지는 않았다. 예약 수만 한정하고 현장 구매 표는 무제한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와중에도 정말 많은 작품 수에 관람객 수, 관람객들이 딱 영국인으로만 한정되지 않은 점, 그럼에도 모두 마스크는 잘 쓰고 있고 기침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인상깊었다. 락다운 때는 전시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작품의 수는 한정적이었지만 거의 다 무료였고 큐레이션도 상당히 잘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실재하는 것과 가상의 차이는 큰 것 같다. 

    락다운이 해제되면서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취미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눈여겨보고 있던 플라워스쿨도 문을 열었고 기회는 이때다 하고 거금을 들여 화훼디자인과 기술을 배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기간의 락다운에 다시 돌입한 것을 생각하면 이 짧은 시간안에 꽃 다루는 것을 배운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른다. 런던은 M&S나 웨이트로즈같은 대형 마트에서 제철 꽃들을 많이 파는데, 싸고 종류도 다양하다. 락다운이라도 마트는 문을 열기 때문에 여기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기분과 철에 맞게 꽃을 구입하고, 집에 와서는 배운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나만의 미니 화훼작품을 만들었다. 유일한 생산활동이었다고나 할까.

플라워 디자인 at my home

    원래는 심화 과정까지 밟을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2, 3차 락다운으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집에서 하는 수 없이 머물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 덕분(?)에 우리는 영상으로 더 많은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적극적인 영상홍보 덕분에 무료로 또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그들이 직접 하는 문화예술분야의 강의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작품 공개에 소극적이던 세계적인 플로리스트들 역시 인스타나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하고 메이킹 필름까지 정성스럽게 제작하여 올리고 있다. 일단 기본적인 기술은 다 습득했으니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이제 기술을 심화하고 나만의 요령과 디자인을 완성해나갈 타이밍이라고 할까. 


    여름의 끝자락이라 수요일인데도 근교 관광지에는 사람이 많다. 런던 근교 리치몬드(Richmond)에 위치한 큐가든(Kew Garden)은 왕립 수목원으로, 창경궁 대온실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유리화실과 다양한 레스토랑 및 카페 등을 갖추고 있는, 한마디로 가족들의 일일여행지로는 최적의 장소다. 여러 대륙과 국가들의 식생을 보여주는 꽃과 나무들을 잘 전시해놓아서 세계 식생을 한눈에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그 자료적인 가치도 높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식생을 영국으로 옮겨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과거 대영제국의 역사가 느껴지기도 한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여러 아시아국가를 지배했던 그 시절, 식물학자들도 함께 파견되어 식민지의 식생연구를 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의 큐가든의 방대한 자료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국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뜬금없이 고민해보게 되었다.

큐가든은 유네스코로 지정된 식물원이기도 한데 각 대륙별 식생을 다 갖고있다. 코로나로 인해 공원 인력을 줄이면서 여름 식물 전시는 물건너갔으니 내년을 기약하라는 슬픈 메시지.

    보통 런던의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인 곳이 많은데, 큐가든은 성인 기준 17파운드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우리돈 3만원에 육박한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리 예약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 특히 실내공간인 온실에는 입장인원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긴 대기줄에 합류해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는 있지만 줄어든 입장객으로 인해 수입도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부(donation) 캠페인에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12월 중순쯤 시작된 2차 락다운으로 다시 모든 문화시설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21년 4월 이후 단계적으로 재개장을 하여 인상적인 전시를 몇 가지 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R&A에 6월쯤 다녀온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 전시회(이를 통해 나도 아이패드로 그림 좀 그려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서 진행한 마크 로쓰코(Mark Rothko)와 Turner 특별전, R&A에 뭉크(Munch) 특별전,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전세계 순회전시가 마침 하이드파크에서도 열려서 런던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전시로서 관람하게 되었다. 한편 정말 보고싶었던 쿠사마 야오이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 전시는 끝내 볼 수 없었다. 원래도 테이트모던의 모든 전시는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에 예약을 하려면 꽤 부지런해야 할 뿐더러 쿠사마 야오이 역시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에서도 최근에 상당히 각광받는 초인기 작가인데다, 코로나 상황이 겹치면서 거리두기를 위해 평소보다 한정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다. 


    영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매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박물관 미술관 가이드북을 따로 하나 만들어서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꿈은 이제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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