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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7.

ep 7. 쇼핑과 외식 산업의 변화

    런던에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xx의 민족'과 같은 앱이 ‘딜리버루(delivderoo)’이다. 거리에 따라 배달비가 3천원~7천원까지 올라가서, 비싼 배달비 때문에 선뜻 시키기 어려운 앱이지만 월 정기료를 만 칠천원 정도 지불하면 10파운드 이상 주문시 무료배달이라서, 거의 매일 배달해서 먹는 나에게는 필수품이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앱 서비스가 매우 활성화된 것은 런던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에도 배달이 우리나라만큼 빠르고 별 게 다 배달된다고 생각했었다. 수란이 올라가는 에그 베네딕트까지 배달 될 정도니! 어떻게 배달이 되나 보니, 실제 식당에서 서빙하는 서비스도 진행중인 곳을 예로들지만, 사진과 같이 가림막 아래에 작은 공간을 두고 패키징된 음식만 딱 가져갈 수 있도록 마련해 두었더라. 참 이런 것은 설레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간단하게 포장해서 파는 음식들이 많고 샌드위치로도 한 끼 잘 해결하는 런더너들이라서 먹을 것에 큰 고민을 하진 않는 것 같다. 외식산업 종사자들을 잘 관찰해보면, 지금 이 코로나위기에 나와서 서빙하고 요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민자이거나 외국인 노동자다. 대체로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온 것 같은 악센트를 가지고 있다. 그 많은 영국 사람들은 다 어딜 가버린 걸까.

    파리처럼 미식으로 유명한 도시는 아니지만, 런던은 다양한 문화에서 비롯된 음식들을 모두 맛볼 수 있기에 다양성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기가 맛본 식재료나 향취를 응용하여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는 데 능하다. 런던에는 수많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3스타 레스토랑 중 유일하게 7월 4일 락다운이 해제되는 주 부터 영업을 시작한 곳이 고든램지 레스토랑(Restaurant Gordon Ramsay)이다. 원래 예약을 하기가 무척 어려운 곳인데, 2주일 전에 예약이 잘 되었다. 파인 다이닝 시장을 뒷받침 하는 주요 고객들은 역시 관광객(특히 중국에서 온)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을 떠나기 전에 기념으로 한 번 방문하려던 곳이었는데 코로나 2차 대유행이 터지고 또 문을 닫을지도 모르니 예약이 될 때 부리나케 다녀왔다.  

    많은 레스토랑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는데, 이런 식재료의 조달이라든지 팀워크가 중요한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방문했고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던 맛이지만, 코로나로 인한 오랜 공백기 때문에 아직 실력발휘가 덜 된 것이라고 대신 변명을 해주고 싶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런 파인 레스토랑의 지배인이나 서버는 거의 프랑스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반은 프랑스, 몇 명은 이탈리아 또는 아예 제 3국에서 일하러 온 것으로 보인다. 영국인들은 정말 다들 어디서 일하고 있을까? 금융업계? 법조계? 아니면 상속자? 대대손손 귀족?

런던의 고급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는 영국 또는 프랑스산 은식기를 많이 내놓는다. 이걸 볼 때면 잘 까매진다고 가족 모두 기피하던 우리집 은식기가 생각난다.

    주말의 백화점 사정은 좀 나은 듯 하다. 어디서 이렇게 모였는지는 모르지만 역시 영어보다는 다른 외국어가 많이 들리는 것이, 관광객도 좀 있는 듯하다. 바로 어제부터 마스크착용이 의무화되었지만 사람들이 잘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는 또한 다르게 백화점 입구에서부터 마스크 미착용자를 위해 마스크를 나누어주기까지 한다. 재밌는 것은 향수매장이 텅텅 비어있는 사실. 마스크를 써야해서 향수를 잘 뿌리지 않게 되려나. 정말 재밌는 차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처음부터 알아서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녀서 국가에서 마스크 수량까지 제한해서 구매하도록 한 반면에 영국 사람들은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에서 강제하니까 하긴 하는데 그걸 또 잘 따라준다. 기관들도 보조금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 정책에 따르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잘 취해주고 있다. 그동안 락다운 된 와중에서도 재개장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한 느낌이다. 과거 제 2차 세계대전때도 이랬을까. 독일의 침공으로 유럽이 혼비백산된 가운데, 영국이 당하고만 있다가 어느순간 전세역전시키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이 좀 어설프다는 거다. 계속 정부 방침을 이야기하는 걸 보아 일단은 안전수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는 것을 겉으로 연출하면서, 혹시 모를 법적 분쟁을 피할 구실을 마련하는 느낌도 든다.  예컨대, 거리두기를 한다면서 한 테이블에 1미터정도의 거리를 두고 의자를 배치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나 싶다. 마스크 대신 이상한 투명 캡을 쓰고 서빙하는 레스토랑 서버도 마찬가지. 입과 코 주변을 다 가리는 것도 아니므로 코로나 입자가 뻥 뚫린 공간으로 다 빠져나갈 것이다. 마스크도 여기는 기능성보다는 패션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KF94, KF80같은 다소 도톰한 인증 마스크를 쓰지만 영국에서는 대부분 치과 마스크나 면마스크를 쓰는데, 패션 아이템으로도 많이 나오고 있다.


    어찌되었든 전대미문의 경기침체와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외식을 하지 않자, ‘서비스차지’(service charge, 보통 계산할 때 전체 음식가격의 12.5%를 추가로 가산한다)로 먹고사는 레스토랑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렵게되었다. 이에 잉글랜드 정부에서는 ‘Eat out to Help out’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 제도는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즉, 사람들이 제일 외식을 하지 않는) 8월 한 달에 한하여 외식비의 50%를 지원해주는 파격적인 지원책이다. 물론 결국 정부의 보조금이고 국민 세금으로 이어질 일이지만 그래도 인기있는 레스토랑들은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는 예약이 꽤나 찬 모양이다. 일부 미슐랭스타를 받은 레스토랑까지도 참여하는데, 이들은 이미 한달 동안 예약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 효과는 예상 외로 와우.

    일단 관광객과 코로나의 위험성을 더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은 예약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엄청나게 인기몰이를 하던 레스토랑들의 예약도 어렵기는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굉장히 쉬워진 편이다. 또 다른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패스트푸드 체인들도 이 식비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패스트푸드는 비만 등 성인병을 조장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내 경우는 키친을 혼자 쓰기는 너무 좁아 요리하기에 힘들고 식탁도 따로 있지도 않아서 코로나 이전에는 주로 밖에서 사먹었다(사실 한국에서 자취할 때 요리에 빠졌었다. 각종 요리를 다 해보고 나니 질리기도 했다).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많은 서버나 셰프들이 오리지널 영국인은 아닌데, 보통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일하러 온 느낌이다. 특히 유럽은 미국영어보다는 영국영어를 공부하고, 유럽 젊은이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국에 와서  택하면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이 50%의 외식비 지원사업은 결국에는 국가 경제살리기, 일자리 유지하기를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식당 손님들(diner)은 정작 코로나의 위험을 안고 take-out(포장)도 delivery(배달)도 아닌 eat in(식당에서 직접 식사)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단, 알코올 음료는 포함되지 않으며 일부 레스토랑은 논알코올 음료도 배제시키고 있다).

    

    외식 및 숙박업종(a hospitality sector)은 2018년 기준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산업이며 300만명이 넘는 종사자가 여기에 속한다. 이 산업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영국으로서는 정말 큰 손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Eat out to Help out’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요리를 거의 하지 않고 사먹는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정책이면서, 가능한 집에 있으라며 사람들 나오지 말라고 했다가 이제는 오라고 했다가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보니 인간 일이라는 게 어쩔 수 없나 보다라는 생각도 든다.

    이 식비지원 정책은 8월 한 달만 진행하고 더 이상의 연장은 없다고 선언했는데도, 일부 레스토랑들은 자비를 들여 특정 요일에는 10파운드 한도로 외식비를 50% 깎아주는 정책을 9월에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업이 꽤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는데, 스카이뉴스(skynews) 기사에 따르면 이 정책을 시행함에 따른 적자는 비교적 크지도 않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정부 재정지출상황을 분석한 결과 일자리 유지할 경우 보조금이 94억 파운드 규모였다면, 이 중 전체 외식 및 숙박산업의 세금 감면에 들어간 돈은 41억 파운드 정도였는데, ‘eat out help out’ 정책에는 단 5억 파운드가 소모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스카이뉴스의 기사. 생각보다 정부 예산지원규모는 작았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위시리스트에 저장만 해놓고 있었던, 런던에서 구글 평점이 가장 좋은 식당인 Scully's라는 곳에 다녀왔다. 지난 주부터 문을 다시 열었는데, 평소대로라면 예약을 위해 거의 한 달 전부터 예약을 걸어놓아야 했던 곳이다. 오늘은 화요일이기도 하고 런치이기도 해서 사람이 많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네 테이블만 찼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이었다. 오히려 오픈형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이는 요리사의 수가 손님 수보다 더 많았다. 그래도  테이블마다 투명 가림막도 쳐놓고 서빙해주는 언니들도 투명 가림막이 달린 캡모자를 쓰고 서빙을 한다. 원래는 먹는 중간에 와서 괜찮냐고 물어봐주는데 이젠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더 편하긴 하다.  

이렇게 테이블마다 두꺼운 플라스틱 비닐로 투명 가림막을 해놓아서 조금 안심은 된다.

    또한 내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QR 코드 메뉴판이다. 많은 레스토랑이 종이로 된 메뉴판을 없애고 있다. 대신 QR코드를 통해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직접 메뉴를 보게 되어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은 막상 주문할 때는 점원에게 구두로 주문한다는 점. 이게 보여주기식인 것인지 정말 이게 효과적이라고 믿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코로나로 인하여 주문방식은 물론 사람간의 교류와 접촉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더 앞당겨지고 있는 것 같다.

(왼쪽) 미슐랭 레스토랑 Le Gavroche도 종이 대신 각자 스마트폰으로 메뉴판을 확인하도록 해두었다. (오른쪽) QR코드 메뉴판.


    고든 램지를 나와 첼시 구역을 지나서 해롯백화점 쪽으로 걸어가는데, 해롯 건너편의 백화점인 하비니콜스(Harvey Nicole’s)가 보였다.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social distancing(사회적 거리두기)가 아주 잘 지켜지고 있는 느낌이라서 들어가보았다. 실외보다도 안전한 느낌이다. 사람이 정말 없다. 여성복 매장이든 남성복 매장이든 화장품 매장이든. 점원들은 거의 모든 숍마다 한명씩은 있어서 해롯과는 사뭇 다르고 더 친절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이구 백화점 부도나게 생겼다. 나이트브리지(knightbridge)의 이 금싸라기 땅 위의 백화점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얼마전 영국의 소매유통체인 Debanhams에서 점포를 대폭 줄인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막스앤스펜서(M&S) 역시 규모를 축소한다는 발표를 했는데, 상황이 정말 심각한 것 같다. 공원만 돌아다니다보면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고 한가롭게 노니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할 일이 없어서, 딱히 돈 쓰는 일은 할 수가 없기에 공원으로 가서 한가로이 노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정부에서 뿌리는 돈으로 경제가 버티지만, 아 이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앞으로 진짜 닥쳐올 불황이 두렵다. 이런 대민 서비스업은 다른 유럽국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임금으로 영국인들이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일자리가 없으면 자연스레 영국을 떠날 것이다. 진정한 브렉시트가 될 것이다.

    소매업종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사람들이 불필요한 것에 대한 소비를 줄이는 이 시국에 의류업계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일을 워낙 많이 하니까 물건 하나 살 법하지만, 점심에 큰 지출을 하기도 했고 백화점 상태를 보니 앞으로 추가 세일이 상당부분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가 되었기에, 나 역시도 지갑을 꾹 닫았고 백화점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11월 2차 락다운에 이어서 크리스마스를 지나 장장 4월까지 이어진 3차 락다운에는 레스토랑도 상점도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요리를 하든가 딜리버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잠정적인 실업이 늘어나고 오프라인 상점들이 문을 닫는 상태가 장기화되다 보니 전반적인 소비심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세일도 작년보다 훨씬 오래, 일찍하고 늦게 끝나고 있다. 콧대높은 해롯이나 셀프리지도 당장 오프라인 영업을 재개할 수 없어서 온라인으로 50%씩 파격 세일에 돌입하고 있다.

    모든것이 빠르게 온라인화가 되고 있다. 일하는 방식은 물론이거니와 소비하는 방식도. 서울처럼 대형 몰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개별 플래그십 스토어가 활성화되어 있는 런던이지만, 이번 코로나를 계기로 한바탕 정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런던 밖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오늘 첼시 구역을 거닐면서 몸소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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