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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구 Oct 15. 2021

김씨

시와 시인의 말



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어!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

뭐해? 

하고 묻는다

어머니가

어, 그냥 앉아있어 왜?

하신다 

나는 

그냥 불러봤어 

하고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똥을 누려고 

지금 변기 위에 앉아계시는 어머니는 

나이가 여든다섯이다

나는 어머니보다 마흔한 살이 어리다

어려도

어머니와 아들 사인데 사십 년 정도는 친구 아닌가

밥이 끓는다

엄마, 오늘 남대문시장 갈까?

왜?

그냥     

엄마가 임마 같다





   


      .....................................................................................................................................................

   혼자 쓸쓸히 늙어가는 노인들을 보며 사람들은 남의 집 닭 보듯 한다. 저 닭이 깜박깜박 졸고 있구나, 저 닭이 비실비실 늙어가는구나, 저 닭이 이제는 다 살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구나, 늙으면 죽어야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저 노인이 빼도 박도 못 할 나의 거울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아니 여실히 알면서도 나의 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거울로 똑바로 비춰줘도 거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 노인이 나라는 걸, 바로 나라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나를 돌아봐야 할 그 순간을 약삭스럽게 빠져나간다. 다행인 듯 불행히도 그 순간을 모면한다. 모면하고 제 속에 갇혀서는 마음 쓸어 닫고 도도하게 살아간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이 판에 박힌 인생을 자신은 다를 거라 생각한다. 나는 저렇게 안 살아야지, 나는 저렇게 안 늙어야지 다짐하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거울에 비친 자기가 그러했듯 자기도 그렇게 살다 간다. 자기는 안 죽을 것처럼 살다가 똑같이 마저 간다.   

  

   다 늙어 거동도 못 하는 쓸쓸히 죽어가는 내 부모를 찬 골방에 나 몰라라 뿌리쳐놓고 살면서 그렇게 추악하게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내 자식들 앞에서는 도덕군자인 척한다. 부모에겐 몹쓸 짓을 하면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에게 못한 것 내 자식에게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못된 습성을 합리화시키며 아주 뻔뻔하게 살아간다. 타인의 눈과 귀를 속이는 것이야 이중인격을 타고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가관인 건 자신의 눈과 자신의 귀와 자신의 마음까지 스스로를 속이며 살다 간다는 것이다. 이게 사람인가? 사람이다. 그게 사람이다. 그렇게 개만도 못하게 살아가는 게 그렇게 살아가게 만들어진 게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포악무도한 게 이 몹쓸 인간이라는 것이다. 몹쓸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생의 끝이 그리도 궁금해 서둘러 달려간다. 속도에 미쳐서 뭐든 과속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왜, 무엇 때문에? 절절한 까닭도 없이 몰아쳐 간다. 몰아쳐 가는 그 길의 끝이 결국엔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길이란 걸 모르는 사람들처럼 마구 몰아쳐 달려간다. 그 서슴없음이 그 거침없음이 참혹하다. 삶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료한 공식을 갖고 있다. 곧 죽는다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이도 어른도 군자도 도둑놈도 곧 다 죽는다는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곧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그 순간이 내리막길이다. 이 내리막길에서 사람들은 속도에 매달린다. 왜 속도에 매달릴까. 빠르게 내달릴수록 살날이 그만큼 짧아진다는 것인데 그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죽어라 달려간다. 죽어라 달려가서 종국에는 별로 좋은 자취도 못 남기고 맥없이 죽고 만다. 시종일관 죽는다는 말만 해서 거부반응도 있겠으나 이 정도로는 오히려 부족하다. 곧 죽는다는 말을 늘 머리에 얹고 살아야 한다. 눈앞에 붙여놓고 살아야 한다.  

    

   곧 죽는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지상에 헛되게 제물을 쌓는 무식한 짓을 안 할 것이며 귀한 이웃과 칼부림을 하는 몹쓸 짓을 그만 둘 것이다. 백 년도 못살면서 수 천 년 살 것처럼 속도에 미치고 돈에 미쳐 날뛰는 인간들이 한때는 또 영어에 미쳤었다. 봐라, 늙어 죽어가는 내 부모는 팽개치고 쓸데없는 것들에는 잘도 미친다. 어떤 교회들은 지상에 재물을 쌓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며 지상에 열심히 재물을 쌓는다. 권력과 재물, 온갖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의 길을 택했던 석가, 그를 좇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승들이, 권력과 재물을 몽땅 쓸어 내다버려야 할 수행자들이 오히려 그것을 꼭 끌어안고 움켜쥐고 더 가져오라 품을 벌린다. 추악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 추악한 종교와 추악한 신앙과 추악한 마음 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참으로 못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못되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몹쓸 짓만을 하다 간다는 것이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솔로몬 왕의 천금 같은 말씀을 담을 가슴이 인간들에겐 없다. 가슴이 없는 인간들이라면 이 말을 그냥 외우고 살자.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외우고 살자. 삶이란 게 이렇게 덧없고 덧없고 헛된 것인데 하물며 사랑이 없는 삶은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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