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인의 말
시가 잘 써지지 않아
오랫동안 움츠려 지내다가
지난 여름 가을 난데없이
스무 편의 시를 썼다
시 한 편 없던 내게 스무 편은
가당찮게 많은 것이어서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자꾸만
들뜬다 느닷없이 새로 쓴 시를
스무 편이나 갖게 된 나를
봐라,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나는 마치 전사라도 된 듯이
혼자 가만가만 날뛰었다
진짜 졸부의 마음은 잘 모르겠으나
그도 나만큼 이렇게 심장이 벌렁거리고
대책 없이 즐거웠으리라
벌렁 벌렁 벌렁
자꾸만 벌렁거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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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편의 시를 쓰고 졸부가 되어서 심장이 벌렁거려 몇 밤을 설쳤는데 그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 선배가 시집을 삼백권이나 보내줬습니다. 졸부에 이어 난데없이 어마어마한 갑부가 되어버렸지요.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몸 한곳이 딱딱하게 일어섰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주체를 못할 정도로 뻑적지근했습니다. 약 먹은 놈처럼 자꾸만 힘이 뻗쳤습니다. 꿈도 안 꾼 일이 닥쳤으니 팔자에도 없는 떼부자가 되었으니, 종일 굶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이러다 숨이 뚝 멎어버려 그냥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으로 며칠을 그렇게 갑부가 되어 황홀한 날들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