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희구 Oct 26. 2021

신설동에서

시와 시인의 말



차디찬 소주와 

뜨거운 북어국물이 흐르는

검게 그을린 장어 향이 흐르는

너와 나 못다 싸운 이념이 흐르는 

안암천 포장마차 미라보 다리     


술 취한 할아버지 

다리 끝에 쪼그려 앉아 

플라스틱 접시를 태우는    

 

사랑도 열정도 다 삭아버린 

낡은 사내들의 싱거운 말싸움과 

할아버지 심심한 취기가 흐르는

환경호르몬이 흐르는   

   

먼지가 되어, 

그 노래 아름답지 않냐니까 

마주 앉은 사내가 

그런 쓸데없는 말이 지금 왜 필요하냐며 

술 마셨으면 안주나 먹으라는  

    

웃기지 않냐고 

그게 아름다우면 뭐 할거냐고

야유하던 그 낡은 사내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애인과 통화하는     

 

술도 떨어지고 

안주도 떨어지고 다 떨어진 

불륜 같은, 사랑 같은, 낡은 사내 같은, 신설동의 밤 

바람 같은 





    ......................................................................................................................................................

   건너 테이블에서 안경 너머로 이쪽을 흘깃흘깃 바라보던 사내가 신경에 거슬린다. 집게손가락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문어처럼 일어서더니 노래를 부르겠단다.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다. 몇 소절 부르다가 멈춘다. 문어처럼 흐느적거린다. 그러면서 자기는 장교출신이라 이등병의 가사가 생각이 안 난단다. 장교출신 주제에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려고 하다니 아주 버릇없는 장교출신이라는 생각을 하려던 찰나, 마주앉은 사내가 자꾸 딴데 보지 말고 술 마셨으면 안주나 먹으란다. 

작가의 이전글 졸부가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