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탁소엔가
맡겨놓고 찾지 않은 옷이 있을 것만 같다
책갈피에 꽂아둔 편지를 잊은 채
책과 함께 떠나보냈을지도 모른다
까마득히 잊고 보내지 못한 답장들
까마득히 잊혀져간 인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을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이제는 너무 멀리 지나쳐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는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쪽지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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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불혹은 부끄러운 나이다. 구구절절 고독에 지쳐 문드러져 대책 없이 맨송맨송해져버린 나이다. 할 일 없이도 바쁘게 맘 졸여야 하는, 가진 것 없이 이룬 것 없이 맨 벌판에 홀로 서 있어야 하는 독신의 불혹은 치욕의 나이다. 그런 내가 부끄럽다. 파릇했던 시절 가슴을 짓 뜯어대던 첫사랑의 기억도 닳고 닳아 닳아빠지고, 있는 듯 없는 듯 내 존재가 그렇게 쓸쓸히 지워져 가는 나이다.
독신의 불혹은 모든 게 쓸쓸하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아 온전히 한 사람을 담아내지 못하는 불구의 나이다. 끊임없이 담금질당했던 가슴엔 딱딱한 굳은살이 박여 이제 웬만한 술 양으로는 취해지지도 않는 나이다. 술도 그러한데 사람의 밋밋한 정이야 오죽할까. 웬만해선 솔깃해지지도 않는 나이다. 그렇게 저렇게 혹독한 세월 다 견뎌내고 이젠 좀 살아보려 하니 아뿔싸 독신의 불혹은 이 세상에 끼어들 수 없는 거덜 난 나이란다.
얼마 전 누추한 내 집에 좀도둑이 들었었나 보다. 아끼고 어루만지던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몽땅 잃어버렸다. 밤새 골방 세간들까지 난장처럼 뒤엎어 놓고 찾아봤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며칠 잠을 설쳐가며 맘 태웠을 일이다. 온갖 잡동사니를 혹여 쓸 날이 있을까, 쓸 날이 없을지라도 내 살들 같아 이 구석 저 구석 처박아가며 고물상처럼 살아왔는데, 막상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고 나서는 한 순간 가슴 찡함을 맛보고는 그저 담담하다니. 물론 속으로야 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애써 감추려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속 다른 겉마음일 지언정 상처를 깊이 우려내지 못하고 맘 다칠까 안절부절 쉽게 체념해 버리는 겁쟁이인 불혹의 나이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