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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구 Oct 16. 2021

마흔

시와 시인의 말




어느 세탁소엔가

맡겨놓고 찾지 않은 옷이 있을 것만 같다

책갈피에 꽂아둔 편지를 잊은 채

책과 함께 떠나보냈을지도 모른다

까마득히 잊고 보내지 못한 답장들

까마득히 잊혀져간 인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을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이제는 너무 멀리 지나쳐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는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쪽지 같은 것들





   



     ....................................................................................................................................................

   독신의 불혹은 부끄러운 나이다. 구구절절 고독에 지쳐 문드러져 대책 없이 맨송맨송해져버린 나이다. 할 일 없이도 바쁘게 맘 졸여야 하는, 가진 것 없이 이룬 것 없이 맨 벌판에 홀로 서 있어야 하는 독신의 불혹은 치욕의 나이다. 그런 내가 부끄럽다. 파릇했던 시절 가슴을 짓 뜯어대던 첫사랑의 기억도 닳고 닳아 닳아빠지고, 있는 듯 없는 듯 내 존재가 그렇게 쓸쓸히 지워져 가는 나이다.      


   독신의 불혹은 모든 게 쓸쓸하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아 온전히 한 사람을 담아내지 못하는 불구의 나이다. 끊임없이 담금질당했던 가슴엔 딱딱한 굳은살이 박여 이제 웬만한 술 양으로는 취해지지도 않는 나이다. 술도 그러한데 사람의 밋밋한 정이야 오죽할까. 웬만해선 솔깃해지지도 않는 나이다. 그렇게 저렇게 혹독한 세월 다 견뎌내고 이젠 좀 살아보려 하니 아뿔싸 독신의 불혹은 이 세상에 끼어들 수 없는 거덜 난 나이란다.     


   얼마 전 누추한 내 집에 좀도둑이 들었었나 보다. 아끼고 어루만지던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몽땅 잃어버렸다. 밤새 골방 세간들까지 난장처럼 뒤엎어 놓고 찾아봤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며칠 잠을 설쳐가며 맘 태웠을 일이다. 온갖 잡동사니를 혹여 쓸 날이 있을까, 쓸 날이 없을지라도 내 살들 같아 이 구석 저 구석 처박아가며 고물상처럼 살아왔는데, 막상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고 나서는 한 순간 가슴 찡함을 맛보고는 그저 담담하다니. 물론 속으로야 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애써 감추려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속 다른 겉마음일 지언정 상처를 깊이 우려내지 못하고 맘 다칠까 안절부절 쉽게 체념해 버리는 겁쟁이인 불혹의 나이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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