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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구 Oct 21. 2021

봉은사 개조심

시와 시인의 말


봉은사 다들 아시죠

신라 때 연회스님이 견성사란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였다는 봉은사

흔히들 이런 절을 천년고찰이라고 부릅니다

연회스님은 신라의 고승으로

늘 법화경을 읽고 보현관행을 수행하였는데

정원 연못에 연꽃이 피어 항상 시들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렇게 유서 깊은 절이

삼성동 73번지 큰길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뭇 중생들 곁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이지요

그 봉은사 경비실 담벼락에

개 만지다 물리면 책임지지 않습니다

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고승의 화두 같기도 하고 

선방 스님의 선문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

쓸데없이 개를 만지려다 물린 사람과 

책임지지 않겠다는 절간의 경비들이 

고만고만하게 모여서 

한바탕 재밌는 일이 벌어질 만도 한데 

일이 커지면

도량 넓은 스님들이 발뺌이야 하겠습니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개한테 물리면 아프니까

봉은사에서 책임져준다고 해도 만지지 말아야지요






   


     .....................................................................................................................................................

   절간에 부처의 자비는 간곳없고 야박한 세상만 들어앉아 있습니다. 봉은사 경비실 담벼락에 ‘개 만지다 물리면 책임지지 않습니다‘ 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경비실 담벼락이라 해도 절간의 경비실 담벼락이니 절간의 경비실 담벼락답게 자비심을 담아서 적어놓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비심을 담을 요량이 없다면 책임지지 않겠다는 무자비한 글귀라도 빼고 ‘개 만지다 물리면 죽을 만큼 아프거나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적어놓았다면 절간의 경비실 담벼락답지 않았을까요? 경고는 더욱 강렬해지고 대신 책임지지 않겠다는 야박한 표현이 없으니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절간의 개주인은 절간 생활 삼년에도 불경을 읊조릴 수준은 아니되었나봅니다. 비단 절간의 개주인 뿐이겠습니까. 만지지 말라는데 자꾸만 만지려는 사람들도 문제지요. 제발 만지지 말라면 만지지 좀 맙시다.      


   얼마나 귀찮게 만지려 들었으면 절간 경비실 담벼락에 저토록 무자비한 글귀를 적어놨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개를 만지다 물리면 죽을 만큼 아프거나 정말 죽기도 하지요. 어떤 이들은 개 아닌 다른 걸 만지다가 쇠고랑 차고 끌려가서 형벌을 받기도 합니다.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은 만지지 맙시다.      


   예전에는 더 삭막한 경고문도 있었지요. 담벼락에 고추와 가위를 그려놓고 ‘담벼락에 오줌 싸면 고추를 잘라버린다’ 아, 정말 섬뜩한 문구입니다. 싸지 말라는데 굳이 오줌을 싸다가 담벼락 주인에게 걸려서 고추가 잘려나간다면 얼마나 아플까요? 정말 죽을 만큼 아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담벼락은 절간이 아니고 여염집 담벼락이니 무자비한 문구이지만 그닥 반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만지지 말라는 개는 만지지 맙시다. 절간에서 책임져준다고 해도 개한테 물리면 아프니까 만지고 싶어도 꾹 참고 만지지 말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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