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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Nov 06. 2023

애 덕분에 수학을 공부합니다.

우리 집에는 연산 문제집 3장 푸는 것을 어려워하는 열 살이 살고 있다.

3학년은 30분을 집중해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아이는 나보고 지어내지 말라고 한다. 말뽄새 하고는.

아니, 엄마가 초등학교 교사인데, 내가 하는 말은 당최 믿지를 않는다. 나를 신뢰하지 않나, 래포가 전혀 형성이 안된 거야? 가장 중요한 게 결핍되었나. 싶어서 자괴감이 든다.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해서 나름 많이 말하고 귀 기울여 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나 보다.

더 많이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늘의 반성이 시작된다.


30분이 힘들면 20분만 같이 앉아 보자고 꼬셨다. 타이머 20분을 맞추고 엄마도 같이 수학문제를 풀 테니 너도 풀어보자. 20분은 집중해서 하는 거야. 약속을 하고 시작을 했다.

첫날은 자꾸 딴소리를 한다. 그 버릇 어디 안 가지.

둘째 날은 내가 옆에서 우당탕탕 커피를 쏟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기 문제를 풀고 있다. 오, 발전이 보이는데.


덕분에 나 역시도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문제를 출력해 봤다. 수능 문제를 풀어볼까 하다가 수능 기출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중3정도가 딱 괜찮았다.

나는 과목 중에 수학을 그나마 가장 좋아했다.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 영역은 내가 생각한 답이 왜 답이 될 수 없는지 납득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다. 해설을 봐도 납득이 안 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이 답이 맞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에서 나의 답은 늘 오답처리 되었다.

수학만이 틀려도 인정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이과스럽지만 별로 그렇지도 못하다. 그냥 문과도 이과도 어디 하나 특출 난 데 없이 중간정도에서 어중간하다. 인생이 전체적으로 어중간한데, 공부머리마저 그렇다.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써라.

아니고,

네가 수학문제를 풀면 엄마도 수학문제를 풀어야 공평하다고 믿는 어린이를 꼬시기 위해 오랜만에 풀어보는 제곱근과 이차방정식은 심지어 재미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 장 풀고 "너무 힘들어. 여기까지만 할래."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던 아이가, 20분 동안 징징거림 없이 푼다. 심지어 타이머가 울리는데도 풀고 있는 문제를 마저 마무리하는 모습까지.

엄마의 역할은 정말 끝도 없이 힘들구나.


책 읽는 엄마의 뒷모습만으로는 부족한가 보다.

"엄마는 맨날 책만 읽잖아!"

그게 불만이 되어버렸다. 아, 책이 재밌는데 어떡하란 말이냐.

놀아줘.(혼자 놀아.)

책 읽어줘.(혼자 읽어 제발.)

이제는 하다 하다 수학문제도 같이 풀어줘.(아이고 두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은 고3, 재수, 삼수, 임용고사 때도 늘 나를 다독이는 말이었지만, 글쎄, 육아야 말로 진정한 정신승리를 하지 않고는 온전하게 버티기 어려운 난관이 분명하다.

왜 삶이 갈수록 고난이도냐.

아. 아직 사춘기는 오지도 않았는데, 앞날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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