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서 단원평가를 몇 점 맞는 줄 아시면 안 물어보셨을 텐데, 왜 나에게 그런 걸 물어보셨을까.
아마도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싶으셨던 것일 게다.
학기 초에 다른 어머니께서 "우리 **이가 그러는데, 00 이가 영어를 제일 잘한다는데요? 공부 어떻게 시켜요?"라고 물으셨던 적이 있다.
"네에? 영어를요?(한국말도 잘 못하는.. 흡)"
"1반에서 영어 제일 잘한다던데요?"
"아니에요. 영어 하나도 못해요. 영어 영상만 보고 있는데, 아마 웨이러 미닛, 유아쏘 스말트, 이런 말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데 그거 듣고 잘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진짜 영알못이에요."
"아. 영어학원 안 다녀요?"
"네."
하며 나는 수줍게 웃었다. 정말 수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알파벳도 구별 못하는 앤데, 친구들 앞에서 얼마나 쏼라쏼라 해댔으면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을까. 심지어 우리 아이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말했던 친구는 영어유치원 출신이었다.
어디 영어 학원을 다니냐고 묻는 어머니께 "아무 데도 안 다녀요."라고 말했다.
"영어 학원 아무 데도 안 다니는 애는 아마 우리 애랑 그집애 밖에 없겠네요. 내년에는 보내야 하는데 어디 많이 보내는지 알아보고 있거든요."
"네. 그러시구나. 제가 영어 학원 쪽으로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요. 음. 아이 친구 보니까 $$$다니던데요."
"$$$ 이요? 걔 영유출신이죠? 거기 AR지수 4.0 이상 돼야 들어갈 수 있어요. 일단 우리 애는 들어가지를 못해요."
"아. 그래요? 거기가 그런 곳이었구나. 몰랐어요."
AR지수 따위 검사해 본 적도 없고 레벨테스트는 볼 생각도 없는 엄마의 아이들이라서 행복할까 불행할까. 지금은 아마 행복하리라고 생각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키고 있지 않지만 모든 엄마들은 그러다가 아이가 시기를 놓칠까 봐, 나중에 원망할까 봐, 불안해서 아이를 학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10살이 된 큰아이는 드디어 한 달 전부터 영어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이제 학습이 들어가도 좋다고 하는 열 살이 되었고, 아이도 다니고 싶다고 하길래 보냈는데, 처음 며칠은 좋다고 가다가 점점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공부가 재미있는 유니콘 같은 아이는 우리 집에는 없으니까.
영어학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보고, 그 어머니는 한 마디 던지셨다.
"엄마가 심지가 굳으시네."
글쎄 잘 모르겠지만 그저 아이를 공부시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가 공부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는 사실 공부를 더 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많이 놀아본 아이가 나중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건 애마다 다른 거라서 내가 그렇게 키운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돌려 말해서 내가 학원으로 끌고 다닌다고 또 공부를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학원에 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이 그렇게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다. 다들 즐겁게 다니는 걸 보면, 진짜로 놀기만 하는 우리 아들이 딱히 더 행복한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초등학생을 학원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단원평가를 40점 받아오는 1학년을 마주 보고도 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일절 들지 않는다.
초등 때 놀리기만 하다가 큰코다친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심지가 굳은 것도 아니고 엄마가 무지한 거라고 했다.
나도 안다. 습관 잡아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하지만 습관 잡아주려다가 아이와 관계가 나빠질 바에는 그냥 적당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끔 멍도 때려가면서 심심해서 죽으려고 할 때는 엄마가 책도 읽어주면서, 그렇게 키우는 게 나의 심지다.
아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명언을 얼마 전 아이의 독서모임 선생님께 들었다. 엄마가 아이 때문에 바쁘면 아이는 도망간다, 엄마가 엄마일 하느라고 바쁘면 그걸 보며 아이도 스스로 한다고 한다.
아휴, 그래도 스스로 안 하는 아이도 있다는 거 안다. 정말 인간은 백이면 백 다 다양하다.
학원 다녀 즐거운 아이는 계속 다니면 되고, 학원 안 다녀 행복한 아이는 계속 안 다녀도 되고.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인데, 사실은 그렇게 공부 정서를 망가트리지 않다가 서울대에 갔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속마음이긴 하다. 이건 뭐 심지가 굳은 게 아니고 머리가 굳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