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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Oct 19. 2023

애 재우다 잠들었어요

얼마 전 여러 권의 책을 내신 작가님께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나름 거금을 내고 참여하는 거라 열심히 해서 꼭 글을 잘 써야지,라는 포부로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시간은 밤 10시 30분. 나에게 딱 좋은 시간이었다. 보통 독서모임을 10시에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이 잠들기에 애매한 시간이라 어떤 날은 눕혀 놓고 잠이 들기를 기다리기도 하지만 어떤 날에는 '무서워 증상'이 돋은 둘째 아이를 11시가 넘도록 내 옆에서 두고 같이 화면을 들여다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의자 옆 바닥에서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10시 30분이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참여하기 딱 좋다,라는 생각은 두 번째 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10시까지 잠자리 독서를 하고 "이제 누워서 자자." 하며 불을 껐다. 그냥 평소처럼 이제 엄마는 글쓰기 모임하게 눈감고 자, 했어야 했는데, 그날따라 '무서워'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둘째 아이를 30분 내에 재우고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날따라 나는 왜 이렇게 피곤했을까. 애보다 먼저 잠이 들고 말았다.


깜짝 놀라 눈을 뜨니 11시 40분이었다. 젠장. 망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카톡을 확인해 보니 작가님께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문자를 넣어주셨다. 낯부끄러웠다.

성실함 하나로 살아온 인생인데, 처음부터 '자느라고 수업 빠진 사람'이라는 모양새가 꽤나 민망했고, 그런 이미지를 줘버린 내가 한심했다. 나 원 참, 신생아 키우는 엄마도 아니고 말이다. 잠이 부족할 육아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모임에는 다들 애 키우는 엄마가 많으니까 나를 더 한심하게 볼 것만 같았다. 


아이 덕분에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은 대체 언제까지일까. 


얼마 전 남편의 직장 후배가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어 애기 옷을 사러 갔다. 오랜만에 아기 옷을 선물하는 거라 손바닥만 한 옷을 살펴보는데 마음이 간질거리고 콧구멍이 벌렁거리도록 기분이 설렜다. 

그러다가 남편이 어이없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그 부부는 애 태어나면 바로 분리 수면할 거라고 하던데?"

"신생아를? 가능한가? 하긴 외국에서는 바로 따로 재운다고는 하던데. 포리너 스타일인가?"

"벌써 애기 방에 cctv도 설치하고 침대도 들여놓고 계획을 다 세웠다길래, 내가 한마디 했지. '야! 우리 애는 8살인데 아직도 혼자 못 자는데 무슨 소리야!'"

"하하하. 맞네 맞아. 첫애라 그래. 그게 부모가 정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말이지. 애 성향이 중요하지. 애가 정하는 거라 태어나봐야 알지."

예비부부는 계획이 다 있었지만, 이미 아이를 키우는 나는 육아에 계획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지를 알기에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뭐든 빨리 해버리고 다음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린아이들을 키울 때 몇 개 없는 설거지 거리에도 대여섯 번을 물을 끄고 아이에게 가야 하는 그런 시간들이 지독히도 힘들었다. 

나는 오늘 나들이를 갈 계획이 있는데, 아이가 낮잠을 자버린다거나.

집에서 쉬면서 책을 한 권 읽으려고 했는데 아이의 징징 데이라서 놀이터에 나가야 한다거나.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나를 통제할 수 없으니 그 스트레스가 말도 못 했다.


계획대로 되는 육아는 없다.


큰 그림만 그릴뿐이다. 예를 들어 책육아를 하고 싶으니 책을 주야장천 읽어주고는 있지만 아이들이 여전히 엄마가 읽어주는 책만 좋아하고 스스로 읽지를 않는다.

영어 영상을 하루 2시간씩 보여주면 3년 안에 아웃풋이 터진다길래 5년째 영상을 보고 있지만 개뿔이라거나.

발레학원을 좀 그만뒀으면 좋겠지만 죽어라고 라이딩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게 바로 육아의 세계다.


8살이나 된 아이를 재우느라 잠들어 버린 나는, 아무래도 아이를 안 키워본 사람이 보기에는 한심할 지도 모르겠다. 첫아이를 만난 날을 목전에 둔 예비 엄마는 8살까지 재워주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우리 부부를 한심하게 생각했을까.(아 물론 남편은 재우지 않는다. 나 혼자 재울뿐)

키워보시길. 

이런 글을 쓰는 나도 20살짜리를 키우는 엄마가 보기에 얼마나 가소로울까.

그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는 걸 나이를 먹어가니 꾸준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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