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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Nov 16. 2023

나는 사수생이었다

오늘은 수능일이다. 주변에 수능을 보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면서 수능과 나와의 상관관계도 무의미해져, 뉴스에서나 길에서 수험생들 파이팅, 이라는 글귀를 보지 못했다면 수능인 줄도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이제 내 아이들이 수험생이 되는 십 년쯤 후에는 나까지 덩달아 긴장으로 뒷목이 뻐근한 며칠을 보내겠지만 아직까지는 관심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학한 학교에서 3월 2일 날 자퇴서를 제출하고 엄마 몰래 재수학원을 다니다가 한 달쯤 후에 이실직고를 한 후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집에서 다시 수험생 모드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또 떨어졌다. 삼수, 그리고 사수.

사수 이후에도 원래 내가 원하던 과에는 가지 못했다. 그저 아빠가 교사라서, 그리고 성적에 맞춰서 교대에 진학했다.

입학을 할 때는 우리 과 37명 중에 내가 왕언니 일 줄 알았는데, 나는 겨우 10번째 언니였다. 내 위로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가 9명이나 있었고 동갑친구도 3명이나 있었지 뭔가. 바로 윗 학번은 현역이 대부분이었고, 우리 학번이 유일하게 노땅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저절로 윗학번과 사이가 안 좋았다.

심지어 우리 학번에는 군대를 다녀온 오빠들이 3명 있었는데, 윗선배들이 남자들만 불러 군기 잡는다고 엎드려뻗쳐를 시켰다가 오빠들과 한판 떴던 일도 있었다.

나는 스물세 살의 신입생이었고, 어느 날 스물한 살의 선배가 술에 취해 나에게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에 나는 재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둥, 눈물 젖은 빵 따위의 말들을 인생의 기조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그가 가짢았다. 재수도 안 해본 주제에 어디서 인생 타령이야.

그 시절에는 드라마에서 사랑 때문에 죽네 사네 눈물 펑펑 흘리는 내용을 보면서 실소를 흘렸다. 사랑 따위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수능이 코앞인데.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수능은 정말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이벤트인데 수험생들에게는 인생의 결승점이라는 생각이 여전하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말 그대로 늘 현실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학생들이야말로 진정 인생을 즐기는 자들이 아닐까. 


나는 사수생이었고, 그 사실은 무척 쪽팔려서 누구에게도 잘 말하지 못했다. 사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결혼했으니 사기 결혼인가. 지금도 사람들에게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좀 늦게 갔어요,라고만 할 뿐.

누군 그러겠지 사수씩이나 해서 서울대도 못 갔다고. 아휴, 내가 지금 수능 보면 서울대 의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을 갔던 이에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거다. 

내가 내년 수능을 치고 서울대 의대를 진짜 갈 수 있을지 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아니, 수능 감독으로 가야 할 나이에 수험생으로 앉아있기도 싫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입시는 인생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처럼 입학부터 전공이 정해지는 특수한 직업을 제외하고는 스무 살 이후에 어떻게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 게다가 요즘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길이 있기도 한데, 오늘 수능을 보는 아이들은 그저 좋은 성적을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을 테지. 나도 그 시절을 지나왔고, 역시 간절했으므로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인생은 노력한 만큼 정비례로 결과가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며 혹시 그렇게 되더라도 원래 인생이 그런 거니까, 네 잘못은 아니라는 거다.


나도 내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옆 학교에서 수능을 본다고 오늘은 운동장 활동도 자제하고 하교 후에 아이들이 길에서 소리 지르고 떠들지 않게 해 달라는 알림장을 보니, 수능은 수능이구나.(다행인지 비가 와서 애들이 놀면서 떠들지는 않겠다.) 그만큼 수능은 국가적인 행사인 것만 같다. 그곳에서 잘해내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진 열망일 것이지만 못했다고 그게 패배는 아닌데, 아이들에게는 내 말이 꼰대의 말처럼 밖에 들리지 않을것이니까 좀 답답하다.


정말, 대학이 뭐길래.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살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지만 자식을 낳고 보니 여전히 불쌍하고 안타깝다. 아이들이 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뭐든지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되길. 그렇다고 나처럼 사수하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대문 사진 미우새 김종국 (김종국 씨가 사수했다는 걸 이번에 검색하며 알았다. 와 동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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