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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Dec 05. 2023

남편은 나에게 돈을 보내고 울었다?

지난달 그러니까 11월에는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았다. 남은 계좌의 돈으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1월 말일에 역시 입금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카톡을 보냈다.


"돈 주세요"

그는 나에게 돈을 보내고 "ㅠㅠ" 도 같이 보냈다.

응?

왜 우는 거지?

생활비가 아까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물어봤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생활비 주는 게 아까워서 우는 표시 한 거야?"

나는 조금 집요하게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서 뭐래, 하는 표정으로 대답이 없었다. 무응답은 긍정이라는 뜻이 아니었던가.

아니 이 좌식이 뭐라는 거야. 나도 조금 눈꼬리를 올려서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집요하고 싶었으니 대답을 꼭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였다.

"어? 왜 대답이 없어?"

"뭐가 아까워. 그냥 돈이 없어서 그렇지."


아까운 건 아닌데 돈이 없어서 슬프다. 그 말 뜻은 나와 아이들이 먹고 쓰는 돈이 아깝다는 뜻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그냥 답을 정해놓고 물어본 것일 뿐이었는지. 솔직히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질문으로 인해 기분이 꽁해졌다.




얼마 전 복직서류를 작성하러 학교에 다녀왔다. 2년간의 무급휴직을 마치고 이제 복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밀린 기여금과 건보료는 어쩔 것인가. 2년 동안 기여금만 천만원정도 밀려 있지만 미리 낼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복직하고 나서도 나의 월급은 귀여운 수준일 것이다. 그것으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5년 안에 대출금 갚기 프로젝트는 잘 완수가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커가고 나는 커피 한 잔 사 마시지 못하지만 늘 돈이 없는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까.


옷을 안 산 지 얼마나 되었지? 아 이번에 시댁 결혼식 때문에 가을 재킷을 하나 샀구나. 휴직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옷이었다. 남편은 내가 4년 전 재봉틀로 만들어준 겨울 티셔츠를 집에 오는 주말마다 입고 있는데 목이 다 늘어나서 시보리가 쭈글쭈글 거린다.

매달 생활비 200만에서 학원비를 내고 나면 늘 마이너스를 면하기 어렵다.

"3인가족 식비 50만 원으로 살아요"라는 인스타 피드를 볼 때면 그 정도는 나도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식비는 그렇다 쳐도 학교 끝나고 먹는 간식, 학원 가기 전에 사 먹는 떡볶이에다가 소소하게 가지고 싶다는 스티커나 우정 반지나 그런 걸 사주다 보면 아이들이 쓰는 돈만 해도 몇십은 된다. 그러니 200으로 살고 나면 나에게 투자하는 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몇 개의 독서모임을 하고 책을 사대는 나의 모습은 나도 모르는 척 슬쩍 눈감곤 하는데 내가 나한테 이 정도도 투자 못하냐고 합리화한다. 그래도 요즘은 예스 24에 들어갈 때마다 장바구니만 터지도록 넣고 있지 책 한 권 구입하는데 백번씩 망설인다. 그래, 읽을 책이 책꽂이에 산재해 있는데 또 책을 사는 건 너무 욕심이야, 그러니까 이제 책을 사지 않겠어,라는 나의 결심은 하루를 못 가고 또 온라인 서점을 기웃기웃 댄다.


왜 나는 부자가 되지 못할까,라는 고민은 고민도 아니다. 벌지 않고 쓰니까.

남편이 보내주는 생활비가 당연하다는 듯이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돈을 내놓으라고 강요한 건 아닌가. 주지 않는 마음을 받기만 하겠다는 것도 욕심이겠지.

내가 집에서 기어 다니면서 걸레질을 하고, 하루에도 네다섯 번의 설거지를 하고 빨랫감을 돌려 매일 옷장에 새 옷냄새를 풍겨주는 것은 누구에게 생색을 낼 수도 없는 일이니까, 그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도 잘 드러내지 못했던 거다.


남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겨줬나,라는 고민을 잠시 한다.

하지만 나는 역시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내가 좀 더, 아니 많이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남이 번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엄마들의 삶이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가정주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진짜 유명한 작가가 돼서 가녀장으로써의 삶을 살고 남편에게 생활비를 턱턱 줄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갑자기 이슬아 작가가 부럽고 막 그러네. 의식의 흐름으로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겨우 딱 하루 녹색어머니 봉사활동 한다고 "추울 텐데 내복을 입고 나가야겠다"며 남편에게 징징댔던 내가 살짝 부끄러워지기는 한다. 매일 내복을 입고 추운 현장에서 돌아다니는 그는 내가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애들 먹는 것까지 아까워하는 건 아니겠지만 살짝 기분이 상했던 카톡의 "ㅠㅠ"는 진짜 그의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맞아, 주지 않은 마음을 받겠다는 건 욕심이고 벌지 않으면서 돈이 없다고 투덜대는 것도 욕심이다. 책장에 책이 쌓이는 것도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ㅠㅠ"를 받기 전에 하트를 주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과연 받기도 전에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를 바꿀 수는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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