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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Jul 30. 2022

읽고 토론하고 사랑하라, 마을 북클럽에서

Summer House

어느새 다섯 번째 북클럽 날이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데도 영어로 책을 읽어야 하니 진도가 더딘 데다 중간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해서 모임이 잦은 기분이다. 어쩌다 보니 네 번째 북클럽 후기는 쓰지 않았고 - 순서에 관계없이 나중에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 여행 때문에 한 번 나오지 못한 것만 빼면 꼬박꼬박 참석해 왔으니 나름 우수 회원(?)이다. 처음에는 토론 전의 근황 토크에 끼어들기 어려워 잠자코 듣고만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영어가 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배짱과 뻔뻔함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그리고 수개월의 영어 수업 결과 완벽하게 말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애당초 터무니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이제는 다 포기하고 틀리거나 말거나 멋대로 지껄이게 되었다는 점도 한몫한다.


이번 달의 책은 <Summer House>로 스토리가 아주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즉, 내 취향은 절대 아니며 북클럽이 아니었으면 펼쳐도 보지 않았을 장르의 책이라는 뜻. 그래도 평소에 읽지 않던 장르도 접하게 되는 것이 북클럽의 장점이니 즐겁게 받아들이고 읽었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릴리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더 이상 결혼생활을 못 하겠다는 쪽지만 남기고 떠났다. 상처 입은 릴리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연히 근처 바닷가 마을에서 미용사를 고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릴리는 이웃들과 함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이런 류의 책이나 영화는 너무나 진부해서 백 편도 넘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미국에는 이 장르의 문학을 좋아하는 팬들이 있어서 출간하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한다.


§ 이번 모임의 호스트인 베스가 나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 준 피치 코블러. 달콤하니 너무 맛있고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얼마 전 손녀를 얻은 베스는 모임 첫날부터 내게 너무 다정했던 친절한 이웃이다. 책의 주인공 릴리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나도 그녀도 좋은 이웃을 만났다는 것. 이것의 행운의 시작이면 좋겠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지 다들 입을 모아 이 책이 홀마크 영화 같다고 평했는데, 홀마크 영화가 대체 뭔가 했더니 카드로 유명한 브랜드 <홀마크>에서 만든 TV 채널로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만 방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웃들 말로는 주인공들 머리 색만 다르고 다 똑같다나. 그래도 중독성이 있는지, 잘생긴 주인공을 보는 맛이 있는지, 또는 영화 속 로맨스로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마음인지 이 채널의 광팬들도 많다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책 내용이 가벼워서 그런지 여지껏은 토론 시간에 늘 돌아가며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이번에는 다들 동시에 얘기를 해서 북클럽이라기보다 전형적인 소녀들의 수다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나도 주인공 릴리처럼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기에 책 내용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했다. 내 인생의 2막도 홀마크 영화처럼 진부할 만큼 쉽고 편안하면 좋을 텐데.


§ 이번 모임에서는 또 다른 이웃 재키의 제안으로 다 읽은 책을 서로 교환하는 북 스와핑 이벤트를 했다. 나는 맨손으로 가서 세 권이나 집어 오는 뻔뻔한 만행을 저질렀다. 하나는 한국어로 감명 깊게 읽었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또 하나는 문장이 쉬워서 집어 든 <브리짓 존스의 일기>, 나머지 하나는 리즈가 강력 추천해 고른 <The Vanishing Half>.


한편 모임 전날 호스트인 베스가 나를 위해 피치 코블러를 만들 계획이니 저녁을 굶고 오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피치 코블러가 대표적인 남부 음식 중 하나라며 내가 돌아가기 전 꼭 맛보게 해 주겠다고 늘 얘기했었는데 빈말이 아니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우리 옆집에 외국인이 이사를 와서 일 년만 있다가 돌아간다고 하면 나 같아도 한국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들을 챙겨줄 것 같기는 하다. 사람들 마음은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고 흔히들 말하는 Southern Hospitality (남부의 환대)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따듯해지기도 했다. 영국 가수 엘튼 존도 이 Southern Hospitality에 반해 애틀랜타에 집을 샀다고 하니 남부의 정에 나만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즐거운 대화와 책 교환 행사를 마친 후 다섯 번째 모임이 끝났다. 다음 달에는 내가 모임을  주최해야 한다. 미국에서 나에게 모든 경험을 시켜주겠다는 목표를 가진 듯한 제니퍼는 무조건 귀국 전 내가 호스트를 하기를 바랐고, 덕분에 나는 조만간 미국 북클럽 모임을 진행하는 색다르지만 부담 백배인 경험을 하게 될 운명에 처했다. 그래도 오늘의 모임을 보니 질문만 던져주면 그들끼리 잘 알아서 얘기할 것 같기도 하다. 여자들의 수다력을 믿고 어떻게든 잘 버텨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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