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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May 23. 2024

직장인에게 권하기 망설여지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54

   - 직장인에게 권하기 망설여지는 독일문학     


    일이 많아서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돼서 개인의 삶이 사라져 속이 상한 마음을 친구 A에게 토로했는데, 갑자기 눈을 밝히며 입을 열었는데......      



    “나 요즘 완전 너 같은 상황에 빠진 소설을 읽고 있는데, 쓰읍 이건 회사생활에 찌든 직장인에게 권하기 좀 꺼려지긴한데, 근데 오히려 공감하면서 특유의 직장인 유머로 읽으면 재미있어서 추천할 만하기도 해! 


카프카 알지?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카프카는 이름처럼 소설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서 주인공을 괴롭혀. 미완성 소설 3편 중 하나인 <소송>을 읽었거든. 


K라는 주인공이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자신의 방으로 정체 모를 이들이 찾아와서 체포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근데 무슨 죄목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말이야. 그렇다고 경찰서나 법원으로 끌고 가지 않고 출근하래. 떳떳한 K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침의 일을 헤프닝으로 넘기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던 게지. 근데 상황이 계속해서 비합리적이라서 첨엔 우스워. 예를 들어서 법원은 어느 공동주택의 다락방에 있어. 공동주택에는 거주자들이 살고 있고, 법정 심리회가 열리는 날이면 자신의 가구를 치워서 법원처럼 만들어 주는 거야. 황당하지. 변호사의 청원서 처리를 담당하는 어떤 관리는 자신이 업무가 너무 많아서 끝낼 수가 없자 변호사들이 법원에 들어올 수 없도록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거야.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역할이 비합리적이더라도 의심 없이 그저 맡은 일만 해. 



영화 <심판>, 오슨 웰스 감독, 1962 

소송은 일단 시작되면 끝이 보이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은 일은 도시 전설처럼 떠돌 뿐이고, 대부분의 소송은 끝없이 이어지다가 관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종료된 듯 착각이 들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문서 사이에서 언제 부활할지 모르는 불안함을 끌어안은 채로 살아야 하는 거지. 이 소설을 왜 직장인에게 권유하는 게 망설여지냐면 환상적인 요소들이 직장생활을 풍자하는 듯해서 우습다가도 업무하다가 마주하는 말도 안 되지만 그냥 일단 하던 내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더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단 말이야. 그때 ‘왜?’라는 질문을 붙이는 순간 주인공 K가 돼서 미쳐버리는 거지. 카프카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고 했던가.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었다고 봐. 끝나지 않는 나의 업무처럼 카프카 소설 속 세계도 숨 막히는 영원성을 띠고 있다는 것도 공포지. 그의 이름은 카프카 거꾸로 해도 카프카...” 



   이어지는 소설 속 황당한 에피소드는 과연 내가 일하면서 목도한 비합리성과 정확히 일치했다. 과연 이것은 어떤 직장인이 즐기며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소송/ 프란츠 카프카(권혁준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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